노동법을 보완하는 노동조례의 사례와 특성
초록
노동법은 근대 시민법 원리를 수정해 노동자와 사용자 간 대등한 힘의 균형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확산 그리고 기술발전 등은 노동법의 노동자 보호체계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냈고 노동법의 역할에 대한 회의를 낳았다.
본 연구는 최근에 노동법이 겪고 있는 위기와 관련한 경제사회적 상황을 반영해 제정된 노동조례의 사례와 특성을 분석해 노동조례가 노동법을 보완하는 대안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유사 선행연구의 내용을 분석한 후 생활임금 조례, 노동이사제 조례, 프리랜서 조례, 노동인권교육 조례를 각각 입법 취지와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어서 노동조례가 법률에 비해 신속한 입법과 적용이 가능하고, 노동자 보호 수준의 향상을 담보하며,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입법 시도를 할 수 있고, 노동자나 시민사회의 참여를 통한 참여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에 기여함으로써 노동법 보완에 적합한 특성을 지녔음을 제시한다. 이 후 그 적용대상이 제한되고, 민간부문에 대한 구속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으며, 안정성 및 체계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한계적 특성을 지적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결론에서는 노동조례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법의 위기에 대한 보완적 대안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지역 노동자와 시민단체의 역할과 연대를 통한 적극적 입법 활동을 도모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Abstract
Labor law has modified the principles of modern civil law to ensure the equal balance of bargaining power between employees and employers, thus ensuring the human dignity of employees. However, globalization, neo-liberalism and technological progress have shown limitations of the protection system of labor law, resulting in skepticism about the role of labor law.
This study seeks to explore the potential of the labor ordinances as an alternative to complement labor law through exampl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labor ordinances enacted reflecting the economic and social situation related to the crisis that labor law is experiencing recently. First of all, this study examines the legislative intent and substances of the following ordinances respectively : living wage ordinance, employee directors ordinance, freelance ordinance and ordinance of labor human rights education. Subsequently, this thesis discuss the characteristics of the labor ordinances suitable for supplementing the labor law, which enables faster legislation and application than an act, ensures the improved worker protection, makes various legislative attempts reflecting local nature, and contributes to the actual implementation of participatory democracy. On the other hand, limiting features of the labor ordinances in supplementing labor law are suggested, which are the constraint of subjects of the labor ordinances, the difficulty in securing the binding force in the private sector, and the lack of stability and systemicity. And alternatives to overcome these problems are followed also.
The conclusion argues that, despite its limitations, labor ordinances legislation can function as a complementary alternative to the crisis of labor law and explains the need for active legislative action through the role and solidarity of local workers and civic groups.
Keywords:
living wage ordinance, employee directors ordinance, freelance ordinance, labor human rights education ordinance, the crisis of labor law키워드:
생활임금 조례, 노동이사제 조례, 프리랜서 조례, 노동인권교육 조례, 노동법의 위기Ⅰ. 서 론
노동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로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동관계를 규율하는 법으로서(임종률, 2019) 고용계약을 근대 시민법의 계약자유 및 사적자치의 원리에만 맡겨 두었을 때 발생하는 사용자와 노동자1)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1980년대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시장만능주의와 경쟁지상주의를 통해 시장과 계약자유에 대한 규제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법에 대한 회의론 내지 무용론을 등장시켰다(김선수, 2013). 2008년 세계금융 위기는 이를 더욱 심화시켜 경직된 노동법이 고용의 효율성과 유연성이 저해하고 취약노동자와 비공식부문 노동자를 적극 보호하지 못한다는 불신을 낳았다(Guy Davidov and Brian Langille, 2011). 우리나라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루어진 노동시장 개혁이 상시적 실업위기와 고용불안의 일상화, 비정규 노동자의 확대,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의 심화, 유연한 임금제도의 확산과 소득분배의 악화에 영향을 주면서(도재형, 2016) 노동법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노동법이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대응해 발 빠르게 법적 규율의 수준과 내용을 변화시켜 나간다면 노동법의 위기에 대한 논의는 기우(杞憂)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 보호와 사용자 규제의 강도와 형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노동법의 개정은 확실히 더디게 이루어진다. 노동관계를 둘러싼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합의가 어려운 것은 물론 법 개정 후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미리 예측하기 쉽지 않으며, 전국에 걸쳐 통일적으로 법을 집행하기 위한 규제비용과 사업집행에 따르는 막대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편 중앙정부의 고유한 업무 영역으로 인식되어 온 노동행정과 노동정책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즉 새로운 기업형태와 고용형태의 출현으로 노동문제가 급증하면서 중앙정부 노동정책의 공백이 커졌고 현장성과 대응성이 뛰어난 지역 차원의 노동정책 대응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김도균 외, 2016). 이러한 변화는 지역노동정책을 입법적·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례의 입법 활성화로 이어졌다. 특히 ‘노동존중특별시’를 시정목표로 내세운 서울시와 2019년 5월 전국 최초로 ‘노동국’을 신설한 경기도 등과 같이 비교적 지방의회 규모가 크고 입법지원 인력이 충분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노동존중 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의 조례, 즉 노동법의 역할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이하 ‘노동조례’라 함)의 입법이 활성화되었다.
이하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대안적 근로자대표제, 노동자 범위 확대, 노동법의 실효성 확보를 각각 입법 목적으로 하는 노동조례2)의 구체적 내용을 검토한 후 이들 조례가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 보장’이라는 노동법 본연의 역할을 보완하는 대안으로서 가지는 의의와 한계를 분석하고 앞으로 노동조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3) 조례가 법률을 보완하는 성격을 가지는 것은 비단 노동법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률이 빠르게 변하는 사회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학계 차원에서 ‘법의 위기’가 논의되는 대표적 영역이 노동법이고 이에 따라 조례의 법률 보완적 성격의 효과가 강력한 것이 노동조례 영역이다. 또한 노동은 지역별 특성이 분명하고 광범위한 지역주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지방자치단체 별 조례 제정을 시도하기 쉽고 노동법 자체가 연성법(soft law)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 비법률적 조치들에 친숙하다는 점에서 노동법은 다른 법 영역보다 조례를 활용하기 적합하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 둔다.
Ⅱ. 연구방법 및 선행연구
본 연구는 노동법을 보완하는 노동조례의 사례와 특성에 대하여 문헌조사방법에 의해 분석한다. 먼저 광역지방자치단체의 노동조례를 분석하고 저서, 논문, 판례 등을 기초로 현행 법체계 하에서 노동조례의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주제와 관련한 직접적인 선행연구는 확인되지 않으며 ‘노동조례’라는 표현 역시 본 글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본 연구와 유사한 선행연구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파악된다. 첫째 국가 노동정책과 구별되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동정책을 다룬 연구, 둘째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의 한계와 개선 방안을 제시한 연구, 셋째 본 연구에서 검토하는 노동조례의 개별적 주제별로 제도의 필요성과 입법 방안 또는 평가 등을 제시한 연구이다. 첫째와 관련하여, 이승길(2011)은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기능을 지자체로 이양하는 문제와 관련해 ILO 제81호 근로감독협약 위반의 문제, 중앙과 지방 간의 이원화, 지방의 근로감독 전문인력 미흡 등을 지적하면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전담을 지지하였고, 김도균 외(2016)는 지방정부가 근로감독이나 산업안전 등의 분야에서 상담, 교육, 실태조사 등을 통해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사전적 예방조치를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으며, 김종진(2016)은 외국 주요국가의 지방자치단체 노동정책과 정책 영역을 분석하고 서울, 광주, 충남의 노동정책의 주요 내용과 노동정책 중간지원 조직의 현황을 제시하였다. 둘째와 관련해서, 김명식(2015)은 지방자치의 본질과 기능을 국민 기본권의 최대한 보장을 위한 통치시스템의 일부로 제시하고 입헌적 지방자치를 통한 주민들의 기본권실현욕구 충족을 위해 자치입법권의 자율성 확대를 주장하였고, 이병렬·이종수(2016)는 헌법 및 지방자치법, 정치권 및 중앙정부의 규제 등에 따른 자치입법권의 한계와 지방분권형 헌법개정과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을 통한 자치입법권 강화의 필요성을 제시하였으며, 문원식 외(2016)는 경기도 조례의 구체적 사례 분석을 통해 법령의 우위 원칙이 주민복리를 위한 정책 형성에 한계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셋째와 관련해서는 이하에서 분석하는 생활임금(이병희, 2015 ; 정용찬·배현회, 2017), 노동이사제(박귀천·유성재, 2016 ; 배규식, 2017 ; 최성환 외, 2016), 프리랜서(오재호·이상훈, 2019), 노동인권교육(송태수·이원희, 2018 ; 정홍준 2019) 각각에 대한 분석 연구가 존재하는데 이들 연구의 내용은 다음 장의 구체적 사례 분석에서 논의된다.
Ⅲ. 노동법을 보완하는 노동조례의 구체적 사례
1. 임금수준 향상 : 생활임금 조례
임금은 근로조건의 가장 핵심적 요소로서 임금액을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자율에 만 맡겨 두면 양 당사자 간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해칠 정도로 낮은 수준으로 결정될 수 있다(임종률, 2019). 이에 최소한의 임금액을 국가가 지정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 제도가 등장했다. 그런데 최저임금(minimum wage)은 그 개념상 최저수준의 임금 즉 인간의 기본적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법정 최소 요건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삶의 질이 문제된다. 특히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른 비정규직 증가와 소득불평등 확대로 저임금 노동자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가면서 최저임금 수준을 대폭 상향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매년 최저임금 인상폭 결정을 두고 노사정 대표 간의 격렬한 대립이 반복되고 그로 인해 인상이 쉽지 않음은 물론 고시된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사업장 비율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방준식, 2017).
이러한 최저임금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생활임금(living wage)이다.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임금 수준을 의미한다. 생활임금 조례는 1994년 미국 볼티모어 市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최저임금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밑돌면서 나타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지역 시민단체와 연방 노동조합이 제안해 도입되었다(정용찬·배현회, 2017). 최저임금법에 따른 최저임금이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려는 것인 반면,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주거·교육·문화 등의 각 분야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임금 수준을 보장하려는 것이므로 그 개념에서부터 생활임금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액을 가정한다. 다만, 전국의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액 이상으로 지급할 의무가 부여되는 것과는 달리 생활임금은 지역 내 공공부문 노동자, 지방자치단체와 공공조달계약 또는 재정지원을 받는 기업의 노동자 등으로 대상을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특징을 가진다(이병희, 2015).
생활임금 조례는 지방자치단체별 생활임금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생활임금을 결정·고시하도록 하고 있으며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소속 산하기관의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보장한다. 2013년 12월 부천시가 전국 최초로 조례를 제정하였고 2014년 6월 지방선거 이후 2014년∼2015년 사이에 경기도·세종시·서울시와 같은 광역자치단체가 조례 제정에 동참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2019. 9. 12. 현재 광역자치단체 총 17개 지역 중 13개 지역4)이 생활임금제를 시행하고 있고,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생활임금 조례가 제정된 지역은 105개5)에 이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고시한 생활임금액의 수준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이러한 차이는 지역별 물가상승률, 경제적·사회적 여건, 재정 상황 및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책적 판단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생활임금액을 기준으로 광역자치단체 중 서울시가 10,148원으로 가장 높고 강원도가 9,011원으로 가장 낮았다. 12개6) 광역자치단체의 생활임금액 평균은 2018년 8,777원, 2019년 9,753원, 2020년 10,143원으로 최저임금액 대비 생활임금액이 2018년 1,247원, 2019년 1,403원, 2020년 1,553원 높았고 비율로는 각각 16%, 17%, 18% 수준으로 높다. 2020년 최저임금액 결정과 관련해 엄청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8,590원이 최저임금으로 결정된 반면, 2020년 생활임금이 고시된 7개 광역지방자치단체는 모두 1만원 이상으로 생활임금을 결정됐다.
이처럼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제를 보완해 일부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개선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와 강원도의 생활임금액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별 최저생계비나 주거비 등의 차이가 생활임금에 반영됨으로써 생활임금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 더욱 체감되기 쉽다. 생활임금 조례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난 미국에서는 생활임금 조례를 통해 낮은 임금으로 인한 공공부조와 근로장려금 등의 공적부담, 건강악화, 범죄율증가, 사회적 갈등 등의 사회적 비용을 완화하는 효과와 공공부문 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공공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 효과가 일부 입증되었다(이병희, 2015). 생활임금제를 통해 근로권과 생존권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임금수준을 포섭하는 권리로서의 생활임금이 논의될 필요가 있겠다(방준식, 2017).
2. 대안적 노동자대표 : 노동이사제 조례
노동이사제란 노동자가 비상임이사로 임명되어 이사회의 일원으로서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노사공동결정 제도이다. 그 구체적 내용은 나라별 법제, 노사관계 및 경영문화 등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최성환 외, 2016). 2015년 기준 유럽경제지역 대상 31개국 중 13개국(오스트리아, 독일,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헝가리,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은 사기업과 공기업 모두에, 6개국(스페인,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칼, 폴란드, 체코)은 공기업에 대해 노동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다(최준선, 2016). 상법적 관점에서 노동이사제는 기업의 주인을 주주(stockholder)로 보는 전통적 관점보다는 기업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를 기업의 주인으로 보는 관점과 관련된다. 채권자·투자자·거래상대방 등 기업의 다양한 계약당사자 중 노동자는 회사로부터 착취당하기 쉽고 노동법적 규제는 불충분하거나 실행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상법상으로도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Reinier Kraakman et el, 2017). 노동이사제 도입이 논의되는 노동법적 배경은 노사관계에서의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약 10%에 불과해 노동조합을 통한 근로자대표시스템이 제한적인 상황과 관련된다(박귀천·유성재, 2016). 단체교섭의 대상이 근로조건 등으로 제한적인 반면 노동자의 경영참여에는 그러한 제한이 없어 노사 간 정보공유가 노동쟁의를 줄이고 경영효율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도 관련된다(박태주, 2016). 또한, 기술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창의적이고 다양한 노동자들의 역량을 활용하고자 함에 따라 ‘통제와 명령’이 아닌 ‘이해, 참여, 협력하는 관계’로서 노동자들의 의사결정참여가 요구되기도 한다(배규식, 2017).
2011년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는 광역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방노동정책을 본격 수립하기 시작해 조례, 행정조직, 정책사업, 지원노동센터 등의 종합시스템을 구축해 냈다(김종진, 2016). 이후 2016년 4월 ‘노동존중특별시’ 선언을 통해 근로자이사제 도입 계획을 발표하고 2016. 9. 29 「서울특별시 근로자7)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는 일정 규모 이상의 서울시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노동자이사를 비상임이사로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동이사제를 제도화하였다. 즉 정원 300명 이상인 공사 등에는 노동자이사 2명, 300명 미만인 공사 등에는 1명 범위 안에서 각 기관의 정관으로 노동자이사를 정하도록 했다. 노동자이사의 임명은 공공기관 설립의 근거가 되는 법령과 정관에서 정한 공개모집과 임원추천위원회 추천 등의 절차를 거쳐 이루어지고 노동자이사가 노동조합원 또는 노사협의회 위원의 자격을 탈퇴 또는 사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9. 7. 17. 현재 서울시는 노동자이사 의무 도입기관 17개소 중 15개소8)에 대해서 총 21명을 선임했고 나머지 2개소9) 2명에 대해서는 선임 중에 있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서울시의 사례를 모델로 국정운영 5개년 계획(2017)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 개혁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영계와 일부 야당에서 노동이사의 전문성 부족에 따른 의사결정 지연 및 기업의 혁신 저해 등을 이유로 반대함에 따라 정부 차원의 노동이사제 도입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 내용을 담고 있는 <표 2>의 각 법률개정안은 2017년 이후 개정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반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표 3>와 같이 노동이사제 조례 제정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조례의 내용은 제도의 명칭이나 의무도입 대상 공공기관의 기준 등에 일부 차이가 있으나 실질적인 제도 운영 방식은 서울시와 동일하다. 다만, 2017년 조례를 제정한 광주광역시가 의무도입 대상 3개 기관 중 2019. 6. 24. 1곳(광주도시철도공사)에만 노동자이사를 임명 완료했고, 2018년 조례를 제정한 경기도의 경우도 2019. 5. 13.에서야 제1호 노동이사가 선임되었으며,10) 인천시의 경우 의무도입 대상 7개 기관 중 2019. 9. 12. 현재까지 어느 곳도 실제 노동이사가 임명되지 않고 있는 등 조례 입법 이후 실제 노동이사의 임명 및 제도 운영까지 1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조례 제정 후 공공기관별 정관 개정 등의 후속 절차를 진행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걸리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노동이사제에 대해서 노동조합의 기능 약화 또는 기업의 의사결정 왜곡이나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견해와 노사 간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 및 노동조건의 실질적 개선을 통한 노사갈등 완화를 이유로 찬성하는 견해가 대립하는 가운데, 노동이사제를 전면 실시하기 보다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해 점차 확대하는 방안으로서(박귀천·유성재, 2016)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노동이사제 조례 제정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방공기업이나 출자·출연기관의 업종이 다양하고 노사 관계나 노동조합의 기능이 각 기업별로 상이하기 때문에 노동이사제 운영의 성과를 다양한 요인으로 분석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이들 기업·기관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경영평가를 받기 때문에 일반 사기업에 비해 노동이사제의 도입이나 운영 과정을 관리·감독하기가 용이하며 노동이사제 확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평가나 분석에 드는 비용도 비교적 적다. 결국 조례를 통한 노동이사제 운영은 노동이사제의 전국적 확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범적 운영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3. 비전형노동자의 보호 : 프리랜서 조례
일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고용형태가 근로계약인지 여부 즉 그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는 중요하다. 노동법이 「근로기준법」의 권리·의무의 주체인 ‘근로자’에게만 적용됨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어떤 노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근로자(노동자)인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자영인과의 구별에 따른 이분법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공장제 생산 혹은 포드주의적 대량 생산 체제 속에서 종속적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도재형, 2016).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동자와 자영인의 중간적 영역에서 종속적 노동과 독립적 노동의 성격이 혼재된 일을 하는 계층(본 글에서는 이를 ‘비전형노동자’로 표현하고자 한다)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이분법의 한계가 나타났다. 비전형노동자는 산업구조의 변화, 사회경제불황 등에 따른 기업분사, 인력 경량화 및 노무관리비 경감 등을 위한 소사장 및 아웃소싱 확산, 직종별 전문화 등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김선수, 2013). 최근에는 이러한 외부적 요인 외에도 고정된 직장에 소속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시간과 일을 조절하며 살아가려는 직업관이 확산되면서 비전형노동자가 늘고 있는데(오재호, 2019), 방송, 언론, 영화, IT, 교육, 컨설팅 등의 분야에서 창의성과 전문성에 기반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노동의 내용적 측면에서도 최근의 노동자는 노동의 이행에 관하여 점점 더 많은 (형식적)자율성을 갖는 반면 자영인은 거대자본에 점점 더 종속되면서(박제성, 2017) 전형적인 이분법 구조를 가지고는 노동자와 자영인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사례가 늘고 있다.
비전형노동자는 대법원 판례의 근로자성에 관한 종합적 판단 기준11)을 적용하는 경우 근로자성이 부인되는 경우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일부 근로자성을 분명 내포하고 있어 어느 정도 노동법적 보호가 불가피하다. 자발적으로 비전형노동을 선택한 경우라 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의 필요성이 큰데, 이는 임금 일자리 수의 감소와 질 저하로 인해 ‘자발성’이 개인의 진정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된 것인지 불명확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선택한 비전형노동자의 노무제공은 그 계약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대등한 교섭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김선수, 2013). 2007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일정한 요건을 갖춘 비전형노동자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명명하고 이들을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으로 포섭하였으나12), 그 밖의 다른 노동법 영역에서는 아직까지도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경제법적 보호로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른 표준계약서 적용과 같은 공정계약방식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거래상지위남용행위 심사지침’과 같은 불공정거래행위 규제방식도 논의되나13), 이들이 가진 근로자성으로부터 노사의 대등성 달성을 통한 근로조건 보호는 노동법적 보호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박은정, 2018).
이에 따라 노동법이 보호 대상으로 삼는 ‘근로자’ 의 정의는 적절한지, 즉 근로자는 아니지만 마치 근로자처럼 계약상대방과 비교해 힘의 불균형이 분명한 경우 노동법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와 같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와 경기도의 프리랜서 조례를 통해 현재 노동법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비전형노동자의 보호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프리랜서’란 주로 하나의 사업에서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하면서도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한다는 점에서 비전형노동자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유사한 개념인데, 일상생활에서 ‘전문적 기술을 노무로 제공하는 1인 자영인’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법률상 용어는 아니다. 특히, 숙련수준이 낮거나 팀 단위로 협업하는 프리랜서의 경우 임금근로자와 비슷한 종속성을 가지고 노동하고 있으며 고용안정성이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정책적 보호의 필요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황준욱, 2009). 프리랜서 권익에 관한 법적 보호 장치로서 조례의 사례는 2017년 5월 뉴욕시가 제정한 ‘프리랜서는 무료가 아니다(Freelance Isn’t Free Act) 조례’가 최초이다. 이 조례는 프리랜서가 120일 동안 800달러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반드시 서면 계약서를 체결하도록 하고 임금 체불 시 소비자보호국 근로정책기준실(Office of Labor Policy & Standards)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무료 변호사 상담 등 소송과 관련한 각종 법률 서비스를 프리랜서에게 제공하도록 하였으며 위반시 25,000달러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14) 국내에서는 2018. 10. 4 서울시가 「서울특별시 프리랜서 권익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노동법상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어 취약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월 보수, 계약서 미작성, 보수 체불 등의 어려움을 겪는 프리랜서를 보호대상으로 삼았다.15) 경기도에서도 2019. 8. 6. 「경기도 프리랜서 지원 조례안」이 제정되었으며 제1조(목적) 규정은 “근로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률의 적용에서 제외된 프리랜서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경기도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고용악화와 일자리 유형 변화에 따라 늘어나는 프리랜서 문제에 선도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해 종래의 노동법이 보호하는 대상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시 조례의 경우 프리랜서 권익 보호 및 지원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 수립·시행, 실태조사, 공정거래 지침, 공정거래 지원센터, 관련 기관·단체의 지원 등 포괄적으로 프리랜서 지원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경기도 조례의 경우 프리랜서 종합계획의 수립·시행 및 실태조사와 함께 업종별 표준계약서 제작 및 공공부문(경기도 및 도 공공기관)의 의무적용과 민간부문 등의 적용 권장, 법률지원, 연합 프리랜서 단체 지원, 프리랜서 지원센터 설치·운영 등 보다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우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종속적 프리랜서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지역인데, 프리랜서 조례는 노동법 영역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고 있던 비전형노동자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입법적 보호 장치가 처음으로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4. 노동법 실효성 확보 : 노동인권교육 조례
우리나라는 군사정권과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노동자가 하위 계급으로 인식되거나 노동의 가치가 왜곡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노동’ 이라는 용어를 사회주의나 노동계급 또는 육체노동과 연계시켜 부정시 하고 ‘근로’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저임금 노동이 저학력과 미숙련 등 개인의 부족함 때문인 것으로 치부되고 노동법을 위반한 가해자를 범법자로 보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정흥준, 2019).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인 직장 내 갑질 문화의 만연 역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그 원인 중 하나이다. 이처럼 노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노동법이 노동현장에서 노동자 보호에 대한 충분한 규범력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의 원인은 노동인권교육의 부재에 있다. 오랫동안 교육영역에서는 노동인권교육16)에 대한 체계적인 관심이 없었고 학교 교과서에서 다루는 노동의 내용은 주로 사회과 교과의 하위주제로 단편적이고 산발적으로 취급되었으며 그 내용 역시 반(反)노동교육에 가까웠다(하인호, 2006). 독일,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의 경우 학교에서의 체계적인 노동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바람직한 직업관을 갖고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시민권까지 보호받도록 하고 있는 것(정흥준, 2019)과 대조적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직장 내에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때라야 노동법에서 보호하는 각종 권리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노동법의 현실 규범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 이러한 문제 인식 하에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2017)의 100대 국정과제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가 반영되어 있고, 노동인권교육 확산을 위한 법률안17)이 논의되고 있으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는 신규 의제별 위원회로 (가칭)노동교육위원회 구성·운영이 논의18)되기도 하였다. 최근 노동인권교육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청소년 노동의 증가와도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24시간 유통업체, 주유소 등 우리 주변에서 ‘일하는 청소년’을 접하는 것이 흔해졌고(진숙경·정흥준, 2017), 2011년 발생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건19) 이후 정부 차원의 대책으로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현장실습을 위한 노동관계법령 교육과 ‘청소년 근로권익 지키기’ 전략 등이 발표되었으며 2014. 7. 15. 은수미 의원이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송태수·이원희, 2018).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반영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노동인권에 관한 교육 실시를 내용으로 하는 교육청 조례가 2015년부터 제정되기 시작했다.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조례’ 는 교육감의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를 내용으로 하는 교육청 소관 조례로써 노동인권 교육을 학교 교육 내에서 체계적으로 실시토록 하였으며 2015. 8. 14. 대전광역시교육청에서 최초로 조례를 제정해 현재 전국 6개 교육청과 2개 시·도에 도입되어 있다.20) 또한 교육 대상을 청소년이나 학교에 국한하지 않고 이주민과 여성 등 노동취약계층을 비롯한 일을 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한 ‘노동권 보장을 위한 교육 지원 조례’도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제정되었다. 교육청 조례는 노동인권교육의 대상을 학교 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도 조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이나 노동자를 대상으로, 각각 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노동인권과 관련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을 실시토록 하고 있다.
교육청 조례에서 노동인권이란 ‘안전하게 일할 권리, 근로조건에 관한 권리 등 노동현장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노동인권과 관련된 교육’21) 또는 ‘「대한민국헌법」및 법률이 보장하거나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권리 중 노동과 관련된 모든 권리’22)로 정의되고 있다. 구체적 사업으로는 노동인권에 대한 학생의 인식 제고, 노동인권교육 전문인력 양성 및 노동인권교육 관련 프로그램의 연구·개발 등의 사항을 담은 노동인권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노동인권교육 표준교안을 학교에 제공하며, 노동인권교육 지도 교사에 대한 직무연수를 실시하도록 했다. 특히 산업수요맞춤형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 일반고등학교 중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학기당 2시간 이상의 노동인권교육 실시 또는 노동인권교육 지도교사 선정을 의무화했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지원 조례는 주민의 노동권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하고 노동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분쟁을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동계약서 작성 및 피해구제 등 노동관계 법령 전반에 관한 교육 실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근로시간이나 임금 또는 산업재해 보상 같은 개별적 노동관계 차원의 분쟁 뿐 아니라 집단적 노동관계 차원에서의 갈등 역시 노동관계 법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의 내부적 의사결정 절차나 정당한 권한 범위 등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 위반 상황이 초래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에 따른 권리침해 위험발생과 함께 사업주 또한 의도치 않게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가해자가 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이승욱, 2019). 따라서 노동인권교육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노동자와 사용자 양쪽 모두에게 노동분쟁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효율적인 기초 작업이 될 수 있고 실제 노동현장에서 유효한 권리구제 수단으로 주장되지 못하는 노동법을 현실의 노동현장으로 되돌릴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다. 노동인권교육의 정의와 구체적 내용 등이 전국적 차원에서 통일적·체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상황에서 각 지역 교육청 차원에서의 조례 제정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노동인권교육이 학교 내에서 실시되는데 기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Ⅲ. 노동조례의 특성
1. 노동법 보완에 적합한 특성
법의 이념인 법적 안정성 관점에서 보면 법 변경이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며 노동법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에 반해 지역의 실정을 반영해 지방의회가 제정하고 해당 지역 주민에게만 적용되는 조례는 법률에 비해 비교적 쉽게 입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법을 보완하는 보충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제20대 국회 개원일인 2016. 5. 30 부터 2019. 9. 15.까지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총 21,735건 중 처리 건은 6,350건으로 법안 처리율이 29%23)에 불과한 반면, 광역의원 142명으로 구성된 전국 최대 광역의회인 제10대 경기도의회는 개원일인 2018. 7. 1 부터 2019. 9. 15. 까지 접수된 조례안 473건 중 401건을 처리해 84%의 조례안 처리율24)을 보이고 있다. 상위법률에서 조례에 위임하는 근거 규정을 둔 경우 조례 입법에 특별한 이견이 없으므로 지방의회의 조례 처리 비율이 높은 이유도 있겠으나,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한 자치사무와 관련해 창조적인 내용의 조례를 제정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조례는 법률에 비해 신속한 입법과 적용이 가능하다.
프리랜서 조례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재 어느 나라도 누가 근로자이고 누가 자영인인지에 관해 명확한 구분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고 그로 인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 문제는 노동법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법관의 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으로 남겨져 있다(도재형, 2016). 중앙정부 차원의 입법 논의에서는 프리랜서 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근로자 개념에 포섭할 것인지 아니면 별도의 법률로 보호할 것인지 이 경우 보호 법영역이 노동법인지 공정경쟁법인지 등의 논의가 계속되는 있는 반면,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는 이미 조례가 입법되어 해당 지역 내 프리랜서에 대한 지방정부 차원의 지원체계가 마련되었다. 법률 영역에서의 입법 공백이 계속되는 한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프리랜서들이 어떠한 공적 영역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게 되는데, 조례 입법이 그 보완적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관계의 새로운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를 제도화하는 규범적·정책적 형식으로 조례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조례 입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신속하게 마련해 둔다면 노동법적 보호 체계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논의를 충분히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노동력은 노동자의 신체·인격과 분리해 제공할 수 없으므로 노동력 제공 과정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고(인적 종속성) 노동자는 누군가에게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불리한 거래 조건에도 이를 받아들여 계약관계를 맺을 수밖에(경제적 종속성) 없다(임종률, 2019). 이처럼 형식적으로는 대등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지배종속적 관계에 놓여 있는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힘의 균형을 회복시키고 사회적 형평을 도모하는 것이 노동법의 본질적 기능이다. 따라서 노동법은 노동자에 대해서는 보호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그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노동조례는 노동법에서 규율하는 것보다 노동자 보호 수준을 더 높인다. 이는 조례의 제정 한계를 규정한 「지방자치법」 제22조25)와 관련된다. 자치입법권의 한계를 규정한 이 규정에 따라 조례는 ① ‘지방자치단체의 소관사무’에 관해서 ②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제정되어야 하고(법률우위의 원칙) ③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은 법률의 위임이 없이는 제정할 수 없다(법률유보의 원칙).
먼저 ①에 따라 노동조례는 자치사무와 단체위임사무에 대해서만 제정할 수 있을 뿐 국가사무에 대해서는 제정할 수 없다. 노동조례와 관련해서는 조례의 내용이 국가사무를 예시한 「지방자치법」 제11조 제5호의 ‘근로기준, 측량단위 등 전국적으로 기준을 통일하고 조정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사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의 경우 최소한의 근로기준을 정하는 것으로 지역별로 다르게 정할 수 없고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을 적용해야 하므로 조례로 그 내용을 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생활임금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 소속 근로자에게 적용하려는 것이어서 주민 복리 증진을 위한 자치사무의 범위에 속한다는 관점에서 추진되었다. 이처럼 자치사무의 일부로써 노동조례를 제정하는 경우 전국적·통일적 규율이 필요한 국가사무와 비교해 그 내용은 노동자 복리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상향된 기준이 적용된다. 다음으로 ②와 관련해서 ‘법령의 범위 안’이란 ‘그 상위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를 의미한다.26) 근로기준법 등 각종 노동법률에서 정하는 기준보다 낮은 수준을 정한 조례는 법률우위의 원칙에 위반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조례는 노동법보다 높은 보호 수준을 가지게 된다. ③은 헌법 제37조제2항의 국민의 기본권 제한과 관련한 법률유보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때 법률에서 조례에 위임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법률상 제한이 없고, 법규명령에 대한 법률의 위임과 같이 반드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조례에 위임한 경우에도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제정할 수 있다.27) 따라서 노동법률이 주민권리 제한이나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을 포괄적으로라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고 있다면 노동조례는 법률에서 정한 것보다 사용자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거나 노동권 보호대상과 수준을 제한하는 내용으로도 제정될 수 있다. 그러나, 노동법률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조례에 위임하고 있는 규정이 없으므로 노동조례의 내용은 당연한 논리 귀결 상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을 수 없고 따라서 조례에서 규정하는 노동자 보호의 수준은 노동법에서 정한 것보다 감소될 수 없다.
이처럼 「지방자치법」 제22조의 자치입법권의 한계는 오히려 노동조례가 노동법에서 규정한 최소한의 기준보다 노동자의 보호 수준을 더 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도록 기능하고 있으며, 이러한 보호 수준 향상의 담보가 해당 지역에서 생활하는 노동자의 권리로서 널리 인식되면 노동조례가 노동법을 보완하는 역할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노동과 임금을 교환하는 장소인 일터는 노동자의 생활권 영역 내에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교통수단과 정보수단의 발전으로 노동장소과 생활장소가 구별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지만 적어도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지역적 범위 내에서는 노동과 생활 영역이 일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9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한 수도권 지역 근로자의 출퇴근 시간과 이동패턴 조사 결과인 서울 거주자의 87%, 경기도 거주자의 73%, 인천 거주자의 68%가 각각 같은 지역 내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사실28)이 이를 지지한다. 이는 곧 노동법의 한계와 관련해 논의되는 여러 문제 상황을 노동자들은 지역적 범위에서 경험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지역에 따라 경제적 여건이나 산업의 종류와 집중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노동법이 노동자의 보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구체적 영역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축산이주노동자와 방송·연예종사자의 노동인권에 관한 문제는 대체로 같은 지역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노동법은 각 지역의 노동 특성을 개별적으로 반영한 보호와 규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기간제나 파견근로자처럼 고용형태에 따라 별개의 법률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역적 특성과는 무관하다.
반면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하는 조례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노동정책의 목표 대상자나 지원 수준을 달리 정할 수 있고 주민 생활과 밀접한 노동영역의 문제를 미리 발굴하는데 유리하며 이를 통해 지역의 주민인 노동자가 생활영역 내에서 삶의 질 개선 체감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대도시와 농어촌 지역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실현할 수 있는 생활임금 수준은 다를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2019년 서울시의 생활임금은 10,148원, 강원도는 9,011원으로 1,000원 이상 차이가 났다. 프리랜서 조례 역시 대도시의 지역적 노동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시도이다. 대도시에서는 전문적 영역에서 노무를 제공하면서도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프리랜서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매우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지만, 농어촌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분명해진다. IT기업들이 밀집한 판교테크노밸리와 제조업체가 밀집한 스마트허브 산업단지29)가 각각 속해 있는 성남시와 안산시가 당면한 노동 문제의 성격과 해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노동조례는 노동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취약노동자 보호와 지역적 일자리 특성을 반영한 노동정책 수립에 있어 노동법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전통적 노동법 영역의 한계를 벗어나는 새롭고 창의적인 정책 수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시도로서 주목할 만한 것은 2018. 5. 1. 제정된 ‘광주광역시 광주형일자리 촉진에 관한 조례’이다. 광주형일자리는 지역사회가 연대와 혁신으로 노사관계 개선과 생산성 향상 등을 도모해 사회통합을 강화하는 지역 혁신운동으로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의 의제를 다룬다. 광주형일자리가 적용된 첫 번째 모델은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주도하는 완성차 공장 합작법인 설립이다. 지역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 유치를 위해 기존 완성차공장의 생산직 임금 수준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주거, 교육, 의료, 교통, 문화 등의 다양한 복지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노사상생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다. 광주형일자리가 저임금의 나쁜 일자리를 양산시키고 헌법상 노동3권을 무력화시킨다는 부정적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고 노동자들의 실질적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 한 점에서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앞에서 살펴본 조례들은 공통적으로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이 주도해 조례 제정을 위한 운동을 펼치고 이를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회가 수용하는 형태로 입법화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생활임금 조례의 경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당시 후보자였던 박원순 시장에게 제안해 추진되었고, 참여연대는 2012년 노원구·성북구의 생활임금 조례 제정을 주도했다. 노동이사제 조례는 서울시가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통합 노조의 제안에 동의하면서 처음 추진되었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프리랜서 조례 제정은 비숙련의 종속적 성격의 노무 제공으로 불공정거래 상황에 놓이기 쉬운 청년들이 주도하였으며 특히 청년유니온이 프리랜서 사례 연구와 지방의회와의 협력을 위한 활동들을 추진하며 입법되었다. 노동인권교육 조례도 전국적으로 확산된 배경에는 각 지역마다 교사나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역할이 있었다. 이들은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조례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실질적인 내용을 건의하는 등 지역의 이슈로 구체화하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진숙경·전흥준, 2017).
국회의 노동법 제·개정과 비교해 노동조례 입법과정은 노동자들 스스로의 목소리를 반영시키거나 시민사회 또는 행정조직과의 연대에 더 적합하다.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대립 또는 노동자 내부 간의 분열과 사회적 무관심 등이 지역 범위 내에서는 크지 않고, 적용 대상 제한, 규제의 부재, 노동권 보호수준 향상 등 조례의 입법 한계로 인해 법률 제정과 비교해 새로운 시도에 대한 격렬한 반발도 적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민주주의의 이상은 시민들이 자신의 고유한 물리적·문화적 영토에 가장 적합한 법률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알랭 쉬피오, 2019) 노동조례를 통해 지역의 노동 특성에 맞는 규범을 지역주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므로 노동조례의 입법과정은 참여민주주의와 사회적 연대의 실험이 실현되는 장(場)이 될 수 있다. 지역의 여러 주체들이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연합하고 이를 제도화함으로써 지역 단위에서 적용하고 운영해 볼 수 있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걸쳐 공통적이고 계속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타당한 경우 정부 차원의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다. 이처럼 주민들로부터 지역을 거쳐 전국적으로 노동정책이 확산되는 일련의 과정은 노동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새로운 구조가 될 수 있다. 반면, 이해관계자의 직접 참여에 따른 부작용으로 집단의사가 왜곡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계할 필요는 있다. 제한된 재화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 있어 공정과 정의에 반해 이를 악용하려는 집단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례 제정 과정에서도 특정 세력과 정치권이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않도록 지역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역할이 필요하다 하겠다.
2. 노동법 보완의 한계적 특성과 극복 방안
지방의회가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입법권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제117조 제1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조례입법권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고유한 권한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하는 조례는 지역적으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구역 범위 내에서만 효력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그 지방자치단체 소속 주민에게만 적용됨이 원칙이다.30) 따라서 노동조례는 대부분 노동자 보호 또는 지원 대상을 해당 지역 외의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조례의 적용대상이 제한적인 이와 같은 한계는 같은 내용의 조례가 짧은 시간 내에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정되는 경우에 일부 극복될 수 있다. 생활임금 조례와 노동인권교육 조례가 진보적 성향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다수 집권하면서 불과 2∼3년 사이의 짧은 시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 그 사례이다. 또한 해당 지역의 주민 뿐 아니라 지역 내에 주소를 둔 사업장을 노동조례에 따른 보호 또는 지원 대상으로 조례에 직접 규정해 적용대상을 확대할 수도 있다. 서울시 프리랜서 권익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조례가 그 적용대상으로 서울특별시 주민과 함께 서울특별시에 소재한 공공기관, 민간기업, 협회 또는 단체 등에게 용역을 제공하는 프리랜서도 포함시킴으로써 서울시 주민이 아닌 프리랜서도 지원 대상으로 삼은 것이 그 사례이다.
노동조례는 「지방자치법」 제22조31) 의 한계 상 민간영역에 규제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법률유보의 원칙에 따라 조례로 의무를 부과하려면 법률의 위임(판례상 포괄적 위임도 가능32))이 있어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법 영역에서는 규제와 의무의 내용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고 있는 법률 규정이 없다. 따라서 노동조례는 노동자 보호나 지원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의무 부과인 경우에도 ‘민간부문 사용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소속기관이나 공공기관에 대한 의무 부과에 그치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생활임금이나 노동이사제 조례에서 의무 적용대상은 지방자치단체 내의 공공영역으로 한정될 뿐 민간영역으로 확대할 수 없다.
민간부문 규제나 의무 부과를 할 수 없는 노동조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2000년대 일본의 노동조합에서 시도한 공계약 조례 제정 운동을 주목해 볼 수 있다. 공계약 조례란 지방자치단체가 공계약(公契約,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공공계약 중 건설 또는 서비스용역과 같이 계약상대방 소속 노동자의 노무 제공이 예정된 경우)을 체결하는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근로조건을 확보할 의무를 정한 계약조항을 담을 것을 강제하는 조례로써 2009년 노다시(野田市)와 2010년 가와사키시(川崎市)에서 제정되었다. 공계약 조례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근로조건 확보는 일본헌법 제27조제2항에 따라 법률에 근거해야 하며 조례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반대론과 공계약 상의 근로조건 준수 의무는 지방자치단체가 당사자가 되는 계약상의 의무에 불과하고 상대방인 사업자는 계약의 자유에 따라 공계약 조례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지방자치단체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있어 근로조건 자체가 공계약 조례에 의해 직접 규율되지 않는다고 보는 찬성론이 대립한다(정영훈, 2011). 지방자치단체나 소속 공공기관이 계약의 일방 당사자로서 상대방에게 특정한 계약 조건을 부과할 수 있고 그 내용이 근로조건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노동법에서 정한 기준보다 상향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조례 제정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본다. 공계약 조례를 통해 공계약의 실적 확보를 통해 경영 성과를 창출하려는 민간 기업에게 노동조건의 준수를 사실상 강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노동조례의 보호 수준 향상의 내용이 민간 부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공계약을 통해 강화된 수준의 노동자 보호나 지원을 민간부문에 확산하려는 시도가 결국 민간 기업이 공계약이 아닌 민간 내부에서는 같은 수준의 노동조건을 제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한계적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공공부문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더 향상된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선량한 고용주의 롤모델이 되도록 기대받는데(Catherine Barnard, 2011) 공계약 수주 경험은 사업·기술 능력, 영업망 확대, 기준 준수, 평판 등의 면에서 민간기업에게 충분한 유인책이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민간부문 내부에서도 자발적인 기준 준수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공계약 조례의 역할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노동조례가 환경변화에 따라 비교적 빠르게 제정될 수 있어 지역별로 노동 환경이나 일자리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노동정책이 안정성에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향이나 지역 여론에 따라 노동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 의지가 달라질 수 있고 그에 따라 노동정책의 내용이 변경되거나 기존에 추진 중이던 노동정책이 중단될 수 있다. 또한 전국적인 근로기준 등을 규율하는 정부 정책과의 혼동이나 중복적 적용 등 노동조례에 따른 지역 노동정책이 체계성이 부족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보수여론과 경영계의 반발로 정부가 중앙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의무도입에 관한 정책적 또는 입법적 논의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만 조례에 근거해 노동이사제를 의무 도입하는 것이 그 사례이다. 조례를 집행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향이 바뀌면 노동이사제의 계속적 운영이 담보되지 못할 우려도 있고, 기관구성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노동이사제 의무도입은 법률유보의 원칙에 따라 법률에 그 근거를 두고 추진되어야 하는데(최성환 외, 2016) 조례로써 일부 자치단체만 도입하고 정부 차원에서는 도입하지 않는 것은 체계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노동조례의 안정성 및 체계성에 관한 문제는 지역노동정책에 관한 노동거버넌스의 활성화를 통해 일부 해소될 수 있다. 「노사관계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그 구성·운영 근거를 두고 있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근로자대표, 사용자대표, 주민대표, 지방노동고용관서 대표,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노동거버넌스이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그 구성면에서 지역 노동문제의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대표성을 지니고 있으나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형식적인 운영에 그치는 사례가 많다. 이를 활성화해 노동, 고용, 직업훈련 등 지역 차원의 다양한 노동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방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볼 수 있다(김도균 외, 2016). 더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의 노동정책이 외부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조정자 역할을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수행할 수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각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의견을 수렴·조율함으로써 지방과 정부의 노동정책 간의 연계성과 밀접성을 높일 수 있다.
Ⅳ. 결 론
기술발전으로 일자리가 소멸되거나 고용형태가 변화하더라도 여전히 다른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해 신체에 종속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받는 임금에만 의존해 생존하는 노동자가 존재하는 한 노동법은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김선수, 2013). 신자유주의 심화와 노동시장 개혁으로 인해 노동법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으나 노동법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합의가 어렵고 사회경제적 영향이 커 그 개정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영향은 노동법이 다른 법에 비해 비법률적 절차와 규범으로 집행되는 연성법의 특징을 가지도록 했다. 법률이 아닌 다른 규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 노동법의 경우 다른 법보다 조례를 활용하기 적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례는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에게 적용되는 법규로써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호하는 노동법의 역할을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미 그 구체적인 사례로서 노동자의 저임금을 극복하고 소득격차를 줄이는 생활임금 조례,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보장함으로써 노사갈등 완화와 노동자대표성 확보에 기여하는 노동이사제 조례, 사용종속성에 따른 근로자성 판단의 한계를 극복하고 비전형노동자 보호를 위한 프리랜서 조례, 노동자 개개인의 노동권에 대한 규범 준수 의식을 높여 노동법의 실효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는 노동인권교육 조례가 그 구체적인 사례이다. 이 밖에도 노동기본 조례,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이행 조례, 감정노동종사자 보호 조례, 노동청소년 보호 조례, 청년 미취업자 취업 지원 조례, 고용상 차별금지 조례 등 노동법의 목적과 내용에 부합하는 여러 노동조례들이 시행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노동법 차원에서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여러 논제들이 지방자치단체의 노동조례에 반영되어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구현되고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인 노동자들의 생활여건이 개선되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밝혔다. 다만 각 조례가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 그 객관적 효과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노동조례는 그 제정과정에서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참여가 용이하고 이를 통해 노동조례가 참여민주주의와 사회적 연대의 실험의 장이 될 수 있으며, 주민 주도로 시험된 노동정책이 여러 지역에 확산되고 정부 차원의 정책으로도 반영되는 노동조례의 입법과정은 노동법이 직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새로운 구조로 발전할 수도 있다. 생활임금 조례가 최저임금 1만원 논의에 영향을 주고 노동인권교육 조례가 정부 차원의 노동인권교육 강화 논의를 견인한 것처럼 노동조례가 전국적 단위에서 논의되면 노동법의 변화와 전체 노동자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다. 비록 조례 자체가 가지는 입법의 한계로 인해 그 적용대상이 제한되고 민간부문에 대한 구속력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우며 노동법 내지 정부정책과의 관계에서 안정성이나 체계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점은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공통적으로 같은 내용의 노동조례를 제정해 그에 담긴 보호 또는 지원 수준이 지역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민간부문에 노동정책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계약당사자인 경우 그 상대방에게 일정 노동기준을 준수토록 계약상 의무를 부담시키거나, 지역노동정책에 관해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노동거버넌스 활성화 등을 통해 이러한 한계가 극복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법 위기에 대한 보완적 대안으로서 노동 조례의 적극적 입법 활동을 도모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지역의 일자리와 노동 특성에 따른 지역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요구가 제대로 표출되고 이를 반영한 노동조례의 입법 활성화를 위해서는 노동문제를 지역적 차원의 중요 문제로 인식하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역할과 연대가 중요하다. 노동이사제의 경우 조례로써 의무도입을 한 것이 현행 법령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어서 위법성이 문제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최성환 외, 2016)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노사 간의 이해와 협의에서 이루어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노동법의 근본이념 내지 기본정신은 ‘노동의 존중’에 있으며, 노동은 근로자의 생존의 기반이자 삶의 의미이며 생활 그 자체이므로(김홍영, 2013) 노동조례 역시 이러한 노동법과 노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지역 노동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입법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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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서 2019년 8월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안산도시공사 법무노무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5년 1월부터 2019년 5월까지 경기도의회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며 조례 입법 업무를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본 논문을 작성하였다. 주요 관심분야는 노동법, 지방자치법, 기후변화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