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지역공동체 확장과 원전위험인식의 차이
초록
이 글은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원자력발전과 관련하여 원전이 위치한 지역사회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특히 고리 1호기 정전사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 해수담수화 갈등, 경주·포항지진 등 다양한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고리원전 인근 지역(장안원전지역공동체)에 한정되었던 원전공동체가 기장군과 부산지역으로 지리적으로 확장되고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어 왔음을 확인하였다. 고리원전시설과의 지리적 근접성을 기준으로 가장 인접한 장안원전공동체, 고리원전과 조금 떨어진 기장원전공동체 그리고 가장 외곽지역인 부산원전공동체로 구분하여, 원전공동체별로 지역주민들의 원전에 대한 인식태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조사결과는 기장이나 부산원전공동체 지역주민들이 장안원전공동체 주민들과는 다른 원전인식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부산원전지역공동체의 경우 장안원전지역공동체보다는 원전위험이나 불안감을 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에 장안원전지역공동체는 원전시설로부터 편익경험을 가장 높게 인정하였으며 원전시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의존성을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결국 원전시설과 근접할수록 원전위험에 대하여 덜 민감하게 반응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근접성이 원전위험에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과정은 이들 지역주민들이 원전위험에 대한 친숙화와 일상화라는 심리적 기제를 경험하여 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장안지역주민들은 원전시설에 대한 찬반의견을 떠나 오랜 기간 동안 원전시설과 근접하여 함께 생활해오면서 원전위험에 대하여 친숙화와 일상화라는 심리적 과정을 겪어 왔음을 장안지역주민들과의 면접결과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는 원전지역공동체를 동일한 정책대상지역으로 인식하고 획일적으로 접근하는 원전관련 지역대응정책에는 한계가 있으며, 다양한 지역이슈와 인식태도에 따라 보다 탄력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Abstract
The study describes the expansion process of the KORI Nuclear Power Plants Communities into three multiple extending local communities : the JangAn community, the GiJang community and the Busan community. The survey results of 445 local residents show that local residents of each communities have different attitudes toward nuclear power plants as well as risk of nuclear power generation. It is very interesting that local residents of the JangAn community have more positive attitudes even though they are living very near to the KORI nuclear power plant than any other communities. Comparing to other communities, the Busan community have been more concerned about the risk of nuclear plower plants. These results imply that local residents of the JangAn community have experienced a complex psychological process of the familiarization and normalization of the nuclear power plants risk. These findings tell us that we need to approach the conflicting issues of nuclear power plants communities more integrative ways based upon diverse needs and experiences of the multiple nuclear power plant communities and their residents.
Keywords:
Nuclear Power Risks, Nuclear Power Plants Local Community, Nuclear Power Plant Community Identity, Risk Perceptions, Familiarization and Normalization Process, Nuclear Power Policy키워드:
원전위험, 원전지역공동체, 원전지역정체성, 위험인식, 원전위험인식의 친숙화·일상화, 원전정책Ⅰ. 시작하며
탈원전, 재생에너지, 에너지전환 등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017년 여름과 가을 3개월 동안 진행되었던 고리원전 5·6호기 건설재개와 관련된 공론화위원회 구성과 진행활동 그리고 논의결과는 일반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고리1호기 폐로 결정 역시 원자력 발전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전문적인 정책이슈를 비전문가인 부산시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문제로 생각하고 판단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공론화위원회가 내린 결정에 대한 찬반의견이나 그 과정의 타당성을 떠나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정책결정과정은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토론(discourse)과 숙의(deliberation)가 이루어지는 절차적 합리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전국에서 모집된 475명의 시민숙의참여자가 제시한 의견과 설문조사에 참여한 20,000여명의 참여자들 응답이 고리원전이 위치하고 있는 고리원전지역사회(부산시 기장군 장안읍과 그 외곽지역)에 대하여 얼마만큼의 고민과 공감을 바탕으로 내려진 결정과 판단이었는가는 알 수 없다. 분명 시민숙의참여자들이나 여론조사 응답자들은 원자력발전(시설)이 거시적인 산업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나 이미 투자된 건설매몰비용 등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원전건설재개 여부를 결정하였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탈원전으로 표현되는 에너지 전환이 가지는 객관적인 경제적·재정적 영향에 대한 평가에 비해, 고리원전 인근 지역주민들이 오랜 시간동안 겪어야 했던 고통이나 이해관계의 상실 등을 얼마나 고려했는지는 의문이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원전이 위치한 지역이 단순히 전력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전력생산기지(location of electric power plants)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삶을 영위해가는 지역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원전이 위치한 지역사회를 바라보고자 한다. 나아가 지역주민들의 입장에서 고리원전정책과 고리원전을 둘러싼 위험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들이 이와 같은 인식구조를 갖게 된 삶과 연관된 심리적 과정을 검토하고자 한다.
고리원전은 1978년 최초로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이후 2017년 12월 기준으로 5개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며 발전량 기준 우리나라 원전발전 비중의 약 23%를 담당하는 중요한 발전시설이다. 실질적인 전력생산비중뿐만 아니라 고리원전의 모습은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의 발자취이자 동시에 미래이기도 하다. 고리원전건설 초기 지역주민들은 원자력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원자력이 안전하고 효율적인 미래 에너지원이라고 믿고 원전을 수용하였다. 아울러 이 지역주민들은 고리원전이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 하였다는 자부심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원전지역이라는 점에서 그만큼 원전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하였으며 심각한 반대와 저항도 치열하게 전개된 지역이기도 하다. 2017년 이후 고리원전지역사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역내 원자로 폐로과정을 경험하고 있으며, 원전이 주는 재정적 편익과 손실, 추가적인 서비스혜택과 규제 등과 함께 원전위험에 대한 불안과 지역 주민들간 갈등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독특한 지역사회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고리원전이 인접해 있는 가장 좁게는 장안읍지역과 이 지역을 둘러싼 기장군지역 그리고 보다 넓게는 부산광역시를 포함한 지역을 각각 3개의 고리원전지역공동체로 설정하였다. 양기용·김창수(2018) 연구를 통해 고리원전지역공동체를 개념적으로 3분하는 작업을 시도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이렇게 장안읍 지역으로부터 점차 원전지역공동체가 확장된 3개 원전지역공동체별로 실제 지역주민들이 가지는 원전위험인식태도와 원전관련 경험을 서로 비교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18년 5월 고리원전 지역공동체 지역주민 4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아울러 장안원전지역공동체 내 길천리와 월래리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바 있는 면접조사결과를 참고하여 원전인근 지역에서 살아온 개별적인 삶의 경험 속에서 원전시설과 원전위험을 바라보는 시각을 검토하였다. 이러한 경험적 자료를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고리원전시설과의 지리적 근접성을 기준으로 설정한 3개(장안·기장·부산) 원전지역공동체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 간에 원전시설에 대한 평가나 원전위험에 대한 인식태도 등에 있어 인식차이가 있는지, 만일 인식차이가 있다면 그러한 차이와 관련되는 요인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특히 장안지역공동체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원전위험에 대한 심리적 인식과정에 원전시설과의 근접성, 의존성, 친숙함 등의 특정한 상황이 작용하였는가를 검토하고자 시도하였다.
Ⅱ. 원전지역공동체 및 원전위험인식에 대한 이론적 논의
원전이 위치한 지역공동체에 대한 기존 연구는 그리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원전주변지역에 대한 연구보다는 오히려 원자력 발전자체에 대한 전체 국민의 의견을 중시하고 원전정책방향에 관한 당위론적인 연구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이 위치한 주변지역에 대해 이루어진 연구들은 원전주변지역들이 원자력발전 또는 원전시설과 연관된 여러 정치·환경·사회·건강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기존원전 주변지역에 추가적인 원전시설이 건설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이들 원전지역주민들이 원전에 대해 가지는 인식태도 변화추이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에 따라 원전주변지역에 실제 거주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생각과 평가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밝히고자 하는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의 조사대상은 대부분 원전주변 근접지역으로 한정되어 이루어졌으며, 설문조사등 양적인 연구방법이 주로 활용되었다.
1. 원전지역공동체에 대한 연구
원전지역공동체와 지역주민들의 원전인식태도에 대한 논의들은 지역공동체 또는 지역정체성 개념과 그 구성요소 등에 관한 기존 선행연구에서 규정한 기본적인 개념틀을 유지하면서 전개되고 있다. 특히 Hillery(1955)나 McMillan and Chavis(1966) 등의 연구는 지역공동체 개념과 그 구성요소들을 정의하고 이를 경험적으로 확인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은 지역공동체의 구성요소로서 지리적 경계,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 그 결과로서 구성원들간 연대의식이나 정서적 유대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이어지는 많은 지역공동체 연구들은 Hillery(1955) 또는 McMillan and Chavis(1966) 등이 제시하는 지역공동체 구성요소들을 경험적으로 확인하고 이러한 구성요소들이 지역주민들이 가지게 되는 지역 자체나 지역현안이슈들에 대한 인식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가를 검토하였다(Puddifoot, 1996; Passi, 2003). 그리고 각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이 지역과 관련되어 갖는 독특한 인식태도, 사고방식, 가치체계 등을 폭넓게 지역정체성 또는 지역공동체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주변지역 역시 다른 지역공동체와 유사하게 원전지역만의 독특한 경험을 갖게 됨으로써 이들 지역 나름대로 원전지역공동체성 또는 원전지역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서 원전지역공동체성이나 원전지역정체성은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서 지역주민들이 원전과 관련하여 직간접으로 겪게 되는 여러 특수한 경험, 기억, 인식과 구성원들간 독특한 상호작용 등에 의해 형성된다. Venables et al.(2012)은 Pred(1983)의 장소성(sense of place)개념을 원용하여 이러한 원전지역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즉 원전지역정체성을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특정한 장소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일치, 동조, 일체화된 감정, 생각의 총체’라고 규정하고, 이와 같은 지역주민들의 특별한 경험과 인식 그리고 이들 간 상호작용은 지역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다른 지역주민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생애사와 기억을 갖게 하며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Venables, et. al., 2012, 372-374). 이러한 원전지역정체성은 해당 장소가 가지는 특성(위험정도, 이미지, 정책과정과 결과)에 대해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다른 지역주민과는 구별되는 특징적인 사회문화적 반응양식을 갖게 한다.
따라서 원전지역공동체 또는 원전지역정체성에 관한 연구들은 주로 지역주민들의 인식태도가 특히 지역주민들의 원전수용성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고자 하는데 집중되었다. 이는 원전관련 시설이 이른바 님비시설로 인식되기 때문에 추가적인 원전시설입지를 위해서는 기존 원전시설입지 지역을 가장 우선하여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전시설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원전수용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실증적으로 검토하는 연구들이 진행되었고, 구체적으로는 원전사업자나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정도, 원전관련 지식과 경험 보유정도, 지역주민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과 원전수용성과 관계가 검토되었다. 아울러 원전지역공동체에 대한 연구들은 원전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여러 가지 긍정적·부정적 파생효과와 이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평가적 태도, 원전위험에 대한 인식 등도 함께 분석하였다(Zuckerman, 1979; Benthin, et al, 1993; 설민·김서용, 2015; 양라윤, 2017).
흔히 원전시설은 지역사회에 직·간접적인 잠재적 위험을 야기한다고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전발전소가 인근지역에 다양한 편익이나 행·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원전사업자나 중앙 및 지방정부가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행·재정적인 인센티브의 영향력, 원전사업자들이 제공하는 간접적 지원들이 지역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이나 생활방식과 인식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져왔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원전시설 종사자와의 교류정도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졌는데,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할수록 지역주민들의 원전수용성이 증가한다는 결과도 제시되었다(심준섭·김지수, 2011; Frantál, 2016; Kato, et al., 2013; Yamane, et al., 2011).
2. 원전과의 근접성과 의존성
원전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원전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다루는 많은 연구들 중에서도, 지역주민이 거주하는 생활공간과 원전시설 사이의 물리적 거리에 따라 주민들의 원전 위험성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원전시설을 포함하여 위험발생가능 물질이 존재하는 위험장소와의 근접성은 지역주민의 원전위험인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여러 가지 각도에서 검토되었다(Frantál, 2016; Hung and Wang, 2011). 하지만 위험시설이나 위험물질과 지역주민들과의 물리적 거리에 대한 연구들은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다. 즉 원자로와 같은 위험시설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원전에 대해 더욱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다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반면에 반대로 원전인접지역일 수록 원전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하고 원전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되는 주장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일종의 NIMBY 가설적인 입장은 위험발생 가능시설과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증대되어 원전 등 위험시설 입지에 대한 반대가 심해진다는 것이다(Lima & Marques, 2005; Boholm & Löfsted, 2004). 위험시설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에서 위험시설 가동상황이나 위험물질 그 자체 또는 위험관련 행동(위험예방활동이나 위험발생시 처리행동) 등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함에 따라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위험발생가능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원전을 포함한 위험대상 시설과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위험시설이나 관련활동에 대한 노출빈도가 높아짐에 따라 해당지역주민들은 위험발생 대상에 대한 관련 정보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에 근거하여 위험발생가능성에 대해 우려 정도가 점차 감소되어 위험 수용성은 높아진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아울러 근접지역에 거주하는 지역주민일 수록 원전에 근무하는 원전종사자들과의 개별적 접촉이 증가하고 직접 취업하거나 원전사업체와의 상호작용이 증가하여 원전안전에 대한 정보가 증가하게 된다. 오히려 원전에 익숙하지 않은 원거리 거주민들이 원전지식과 정보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위험을 증폭해서 인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Baxter & Lee, 2004; Bisconti Research, 2007; Freaudenson & Davidson, 2007).
한편 Cale and Kromer(2015)는 위의 두 입장과는 다소 차별화된 주장을 한다. 물론 원전에 대한 지리적 근접성은 원전지식수준을 높이지만, 위험수용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지리적 근접성이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영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원전위험에 대한 인식태도 차이는 원전과의 물리적인 거리보다는 조사대상 지역의 특성이 어떠한 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예를 들면, 해당 지역에 위험시설이 새롭게 입지하는 상황인가 아니면 이미 조성되고 운영되고 있는 시설에 대한 위험인식인가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위험에 대한 인식은 달리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설입지일 경우 위험시설 운영과 관련된 불확실성, 운영주체에 대한 불신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가능위험에 대해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감정적인 요인의 작용이 커진다고 본다. 이러한 경우 결과적으로 원전에 대한 불안과 반대의 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Wakefield & Elliott, 2000). 반면 기존시설이 이미 입지한 지역에서는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이미 상당한 기간 동안에 원전시설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경험하기 때문에 위험에 대해 민감성이 줄어들어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Greenberg, 2009).
한편 원전지역주민들은 원전시설이 지역내 위치함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경제적·재정적인 지원을 원전사업자 또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로 받게 된다. 이러한 긍정적인 혜택이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원전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유도하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나아가 지역사회 전체가 원전시설입지로부터 야기되는 지방세수, 고용기회, 소득 및 소비창출, 연관 산업 활성화 등 된 여러 형태의 긍정적인 승수효과를 누리게 된다. 이와 같은 혜택을 지역사회전체와 지역주민들이 오랜 기간 경험하게 될 경우에 지역전체는 원전입지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Wynne et al(2007)은 이런 현상을 원전에 대한 지역의존성(local dependency)라고 규정하고 의존성이 증가할수록 지역주민들이 원전시설에 대한 평가나 원전이 입지한 지역이미지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적인 의존성에 더해 원전입지지역의 경우 상대적으로 추가적인 인구유입이 제한적이고 기존 주민들의 유출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원전인근주변지역에서 정주할 수밖에 없는 고령의 지역주민들은 오랜 기간 지역주민들과의 협업이나 갈등과정에서 공유하게 되는 경험과 감정적 교류에서 파생되는 상호간 관계적 의존성 역시 심화될 수 있다(양기용·김은정·김창수, 2018).
3. 원전위험에 대한 친숙화와 일상화
원전지역공동체 지역주민들의 위험인식과 관련하여 또 다른 흥미로운 관점은 원전인접지역 주민들의 위험인식 과정과 심리적 기제에 대한 논의이다. 이와 관련하여 Parkhill et al.(2010)이나 Venables et al.(2012) 등은 지역주민들에 대한 심층면접을 통하여 원전근접주민들의 내면화된 위험인식의 심리적 과정을 이해하고 잠재된 인식상태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시도한 바 있다. 이들은 원전지역공동체 지역주민들이 원전관련 직간접 경험이 많지 않은 일반대중들과는 다른 심리적 과정을 거치면서 원전관련 위험대상시설에 대하여 여타 지역주민들과는 다르게 인지하고 관련 위험을 해석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원전인접 지역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원전시설이 가지는 위험성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관련된 위험인식이나 불안감 등은 사회적, 문화적 맥락, 또는 구체적인 지역적 맥락에서 재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Parkhill et al.(2010)이나 Venables et al.(2012)의 연구에서는 원전근접지역 주민들이 독특하게 경험하는 원전위험에 대한 심리적 인식과정을 친숙화, 일상화, 정상화의 과정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원전지역공동체 지역주민들은 원전관련 위험대상 및 시설물들과 상당히 오랜 기간 일상생활을 함께 하면서 원전위험에 대해 친숙하게 되고(familiarization), 그 위험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것(ordinariness)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위험을 일상적인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위험의 존재를 정상적(normal) 상태로 인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친숙함’이란 대부분 지역주민들은 원전시설을 오랜 기간 동안 매일 생활하면서 바라보고 왔으며, 일부 젊은 사람들에게는 원전시설은 태어나서부터 동네에 있는 존재로서 일종의 익숙한 주변 풍경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남다른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때로는 물리적으로 친숙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친밀하거나 괜찮은(benign)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친숙함은 원전시설에 근무하거나 원전과 관련된 사업이나 유관 업무를 수행하는 친지 등 주위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더욱 강화되기도 한다. 원전이 ‘일상적 존재’(ordinariness)로 부담 없이 수용된다는 것은 친숙함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늘 경험하는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침에 침실 창문을 열면 원전 냉각탑이 보이고 다른 곳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원전시설을 보면 집에 가까이 왔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원전시설이 지역주민들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상화(normalization of risks)’란 원전시설과 관련된 위험들이 아주 예외적이거나 독특한 위험이 아니라 다른 장소나 상황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외부사람들도 늘 경험하게 되는 아주 정상적 상황으로 판단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지역주민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원전주변지역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하는 위험은 마치 차를 운전하거나 여타 공장주변지역에 거주하거나 심지어 휴대폰을 사용하면서도 경험할 수 있는 위험과 유사하다고 강조하게 된다.
4. 접근틀
앞에서 우리는 원전지역공동체에 대한 선행연구를 통하여 지역주민들은 원전시설이나 원전위험에 대하여 다양한 내용의 인식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태도는 원전시설과의 근접성이나 지역의존성 등과 같은 지역적 특성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Lima & Marques, 2005; Boholm & Löfsted, 2004; Baxter & Lee, 2004; Bisconti Research, 2007; Wynne et. al., 2007). 이러한 논의에 따라 이 글에서는 고리원전지역공동체 지역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원전인식태도 특히 원전위험인식이 원전시설과의 근접성과 지역의존성 등과 같은 지리적 특성에 따라 어떠한 차이가 나타나는 가를 경험적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태도 차이가 나타나는 심리적 기제를 검토하고자 시도하였다.
먼저 이 글에서는 원전지역공동체 지역주민들이 원전시설이나 원전위험에 대한 인식태도를 이해하기 위하여 선행연구를 통해 확인한 6가지 요소들을 설정하였다. 6가지 관련 요소들에는 1) 수증기, 방사성물질 측정활동 등 원전시설이나 관련 징후에 대한 직간접경험 (징후경험), 2) 재정지원, 시설지원 등 원전입지에 따른 직간접적인 편익이나 혜택경험(편익경험), 3) 원전입지 및 운영과 관련된 반대, 지지, 요구 등 관련 활동수행(활동경험), 4) 원전관련 지식이나 정보의 이해정도(원전인지), 5) 원전관련 파생되는 위험에 대한 불안, 사고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정도(위험인식), 6) 원전시설(원전위험)로부터 심리적 거리감(심리적 거리) 등이 포함되었다. 이와 같은 6가지 원전관련 지역주민들의 인식태도와 관련하여 설문지를 구성하였다.
한편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기존 연구들은 원전지역공동체 지역주민들이 원전시설과 얼마나 근접하여 거주하고 있는 가 즉 원전근접성(물리적 거리)에 따라 원전입지와 원전위험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주민들의 생각은 개인적으로나 지역사회전체가 원전시설이나 입지에 의해 긍(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입장(원전의존성)에 따라 원전에 대한 평가적 의견 역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응답자의 거주지 행정구역에 따라 구분한 장안원전지역공동체(고리원전으로부터 5㎞ 이내), 기장원전지역공동체(20㎞이내), 부산원전지역공동체(20㎞ 외곽지역)으로 근접성 정도를 구분하였다. 원전시설에 대한 의존성은 지역사회가 원전에 경제적인 측면(고용이나 소비 등)에서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 또는 원전이 지역사회의 중요한 자원인가 아니면 부담스러운 존재인가에 대한 판단에 따라 측정하였다.
지역주민들의 원전에 대한 인식태도와 원전위험에 대한 판단이 원전근접성과 원전의존성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러한 태도를 갖게 하는 기제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Parkhill et al.(2010)이나 Venables et al.(2012) 연구들은 원전지역공동체 지역주민들이 가지는 원전시설이나 원전위험에 대해 가지는 ‘친숙화’와 ‘일상화’라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도 지역주민들과의 면접과 대화자료를 분석한 연구결과(양기용·김은정·김창수, 2018)를 참조하여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친숙화’와 ‘일상화’라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가를 확인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그림 1> 접근틀에 정리되어 있다.
Ⅲ. 원전위험인식태도와 친숙화·일상화의 심리적 기제
1. 고리원전과의 근접성에 따른 원전지역공동체 확장과정
그동안 고리원전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고리원전사업소가 위치해 있는 장안읍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지역은 기장군 행정구역내 고리원자로 반경 5㎞ 안쪽에 있는 지역으로서 여기에는 장안읍 전지역(15개리)과 기장군 일광면 6개 법정리가 포함된다. 이 지역은 기장군 전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Emergency Planning Zone: EPZ)내에서 고리원자로와 가장 가까운 예방적 보호조치구역(Precautionary Zone: PAZ)에 해당한다. 본 연구에서 이 지역을 고리원전과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한 장안원전지역공동체로 구분하고 있다. (<그림 2> 붉은 색 동심원)
이 지역은 그동안 고리원전사업소와의 갈등과 협력이 집중된 공간이다. 기장군과 부산시에 대한 일부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원전사업자와 중앙정부의 행·재정적 지원은 장안읍 지역에 초점을 맞추어 제공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각종 도시계획상의 규제는 물론 원전관련 잠재적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공간도 바로 이 지역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처럼 위험과 이해관계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지역으로 원전정책변화는 물론 작은 사건 사고에도 매우 예민한 지역이다. 아울러 지난 40여년 동안 지역주민들은 원전시설이나 정책에 대응하여 여러 가지 갈등을 실제 경험한 지역이다.
그러나 고리원전지역공동체가 장안원전공동체를 뛰어 넘어 지리적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 여러 상황이 지난 몇 년 동안 전개된 바 있다(양기용·김창수, 2018). 그동안 원전주변지역 불법폐기물 매립의혹, 2007년 고리1호기 수명연장을 둘러싼 논란, 2012년 정전사고(Blackout) 은폐과정, 2015년 해수담수화 정책추진논란 등을 경험하면서 부산지역주민들은 고리원전문제가 단순히 장안원전지역공동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고리원전공동체가 지리적으로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2011년 후쿠시마 지진·원전사고와 잇따른 2016년 경주지진 및 2017년 포항지진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원전사고와 지진피해와 위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원전안전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두려움은 배가되었다. 이후 고리원전1호기 폐로결정과정이나 고리원전5·6호기 건설과정을 둘러싼 공론화과정을 경험하면서 고리원전문제는 부산지역 전체 문제로서 인식되었다. 특히 2014년 지방선거와 2017년 대통령선거과정에서 고리원전문제가 본격적인 정치이슈화 되면서 고리원전에 대한 관심은 전 부산지역으로 확산되고 더욱 주목을 끌게 되었다. 위의 논의를 정리하면 <그림 3>과 같다(양기용·김창수, 2018).
이러한 원전지역공동체 확장과정에서 먼저 지리적으로 관심으로 끄는 지역은 장안읍지역 외곽지역인 기장군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고리원자로로부터 약 5km-22km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기장군 방사선 비상계획구역(Emergency Planning Zone: EPZ)내 이른바 UPZ(Urgent Protective Action Zone)에 해당하는 지역이다(<그림 2> 붉은 색 동심원 외곽-파란 선 경계내 지역). 기장군의 경우 원전사업자로부터 기금지원사업과 사업자 지원사업중 일정비율의 편익을 수혜하고 있으며, 지역자원시설세의 65%를 지원받고 있다. 원전과의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하여 원전을 멀리서나마 쉽게 목도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위험인식을 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 글에서는 이 지역을 장안원전지역공동체와 구분하여 기장원전지역공동체로 나누어 분석한다.
특히 기장원전지역공동체에서 주목할 점은 장안읍지역을 제외한 기장군 특히 정관신도시(정관읍) 지역에서 전개된 급격한 인구사회학적인 변화이다(양기용·김창수, 2018). 지난 10여 년 동안 기장군이 경험한 인구증가의 약 90%정도가 기장군내 정관읍지역으로 인구유입을 통해 이루어졌다.1) 결국 새로 유입한 정관읍지역 주민들은 젊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지역주민들로 원전위험을 심각한 생활위협조건으로 받아드리고 필요하다면 저항이나 반대는 물론 기회가 되면 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찾아 이주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기장군을 제외한 부산광역시의 경우 오랜 기간 동안 고리원전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물론 환경단체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문제제기와 반대운동 등이 전개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일반시민들은 고리원전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2007년 고리원전 1호기 폐쇄여부논란을 시작으로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적극적인 원전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2012년 고리1호기 정전사고, 2014년 기장해수담수화사업 갈등과 2016년 경주지진 등을 경험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하였으며 강한 연대운동으로 전개되었다(김창수, 2016).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고리원전1호기 폐쇄결정과정에서 발생하였으며, 이 당시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강한 연대의식을 발휘하여 고리원전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부산지역 선거과정을 통해 고리원전문제는 정치적인 이슈로 부상하게 되었다. 부산시장선거를 비롯한 2014년 지방선거부터 2016년 국회의원 선거과정을 거치면서 고리원전문제가 중요한 지역현안과 공약내용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양기용·김창수, 2018). 특히 2017년 대통령 선거과정을 통해 부산지역에서 고리원전문제는 에너지정책전환과 탈원전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아젠다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부산원전지역공동체의 경우 개별적이고 내부적인 이해관계결집에 따른 원전지역공동체 형성보다는 환경가치, 사회참여활동, 원전관련정보인지, 정치적 파급효과 등과 같은 외부적인 자극이나 개인적 참여활동을 통하여 새롭게 형성되고 강화된 공동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지역을 장안원전지역공동체와 기장원전지역공동체와 구분하여 부산원전지역공동체로 나누어 분석한다.
2. 고리원전지역공동체별 원전인식태도의 차이
고리원전지역공동체 지역주민들의 원전인식태도를 확인하기 위하여 장안읍, 장안읍을 제외한 기장군, 기장군을 제외한 부산 등 3개 원전지역공동체 거주 성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관련 자료는 저자들이 2018년 미래사회에너지정책연구원에서 수행한 연구내용 일부를 반영하였다. 통계 분석은 SPSS 25.0 프로그램을 활용하였다. 분석에는 총 443부의 설문자료가 활용되었다. <표 1>은 설문조사에 응답한 대상자들의 일반적 특성이 나타나있다. 응답자 중 남성 약 50.6%, 여성 약 47.6%로 성별 분포는 유사하였으며, 연령별로는 고른 분포를 보여서 20대와 30대는 약 20%, 40대와 50대는 약 25%∼30%를 차지하고 있으며, 60대 이상 응답자의 비중은 낮은 편이다. 대졸이 약 52%로 반을 넘었으며, 고졸이 35%로 그 다음이었으며, 가구 월평균 소득수준은 300만원대가 약 20%로 가장 많았다. 자세한 응답자의 일반적 특성은 <표 1>에 정리되어 있다.
응답자 특성가운데 주목할 내용은 설문응답자중 장안원전공동체 거주 응답자가 68명(15.3%), 기장원전공동체 거주자가 87명(19.6%), 그리고 부산원전공동체 지역주민이 260명(58.7%)으로 응답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원전공동체간 특성의 차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지역별 조사대상자 비중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안읍과 기장군 응답자들의 경우 원전이슈의 민감성으로 인한 응답거부, 부산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사가능시간에는 지역이 공동화되는 현상 등 다양한 이유가 당초 의도한대로 충분한 응답자를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먼저 선행연구에서 개념적으로 구분해본 3개의 고리원전지역공동체별로 지역주민들의 원전인식태도에 있어 어떠한 차이와 특성이 있는 가를 경험적으로 확인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원전공동체가 가지는 특성과 원전인식태도를 비교하기 위하여 6가지 원전지역공동체 관련 경험과 인식태도를 질문하였다. 6가지 요소로는 다음과 같이 수증기나 온배수 등 지역구성원들의 원전 시설이나 관련 징후에 대한 직·간접경험(징후경험), 원자력발전소 입지에 따른 행·재정적 지원이나 서비스이용 등 편익경험(편익경험), 저항, 지지, 요구 등 원전 입지 및 운영과 관련된 활동경험(활동경험), 원전 관련 지식 및 정보 인지상태(원전인지), 원자력발전소의 위험과 사고 가능성인식정도(위험인식), 고리원자력발전소와의 심리적 거리감(심리적 거리) 등에 대해 공동체별 비교 분석을 시도하였다.
위의 6가지 요소별로 3개의 원전지역공동체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가 <표 2>에 정리되어 있다. 먼저 장안, 기장, 부산 원전지역공동체별로 이러한 경험과 인식태도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편익경험, 위험인식, 심리적 거리 부문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나머지 징후경험, 활동경험 그리고 원전관련 정보인지에 있어서는 3개 공동체별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보여주지 않았다.
먼저 장안지역이 부산지역에 비해 원전으로 인한 편익경험 수준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이러한 응답은 실제 장안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행·재정적 지원 및 서비스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표 3>이 보여주듯이 세가지 형태의 재정지원사업중에서 기금지원사업과 사업자지원사업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장안읍지역 중심으로 지원되고 있으며, 지역자원시설세 배분방식에 있어서는 기장군이 큰 비중을 사용하고 있다.2) 결국 3곳 중 장안원전지역공동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중의 하나는 실질적인 지원에 대한 경험을 들 수 있으며 이 원전공동체에서 이해관계가 의미있는 요소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응답결과이다.
한편 흥미 있는 응답결과는 위험인식 수준에서 나타난 원전공동체별 차이이다. 얼마나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응답자들은 고리원전으로부터 실제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험인식수준이 더욱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원전지역공동체, 기장원전지역공동체 그리고 장안원전지역공동체 순으로 원전위험인식 수준이 낮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다. 즉 원전을 얼마나 위험하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사고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고 있는지 아울러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 지를 조사하여 그 값을 결합한 결과, 고리원전 인근지역일수록 위험인식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안원전공동체보다 부산원전공동체가, 기장원전공동체보다 부산원전공동체가 원전으로 인한 위험가능성을 높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안지역과 기장지역간에는 원전위험에 대한 인식수준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지속적으로 원전관련 시설과 위험징후 요인에 노출될 경우 오히려 그러한 위험에 상대적으로 둔감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Zuckerman, 1979; 설민·김서용, 2015).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결과는, 고리원전으로부터의 심리적 거리에 대한 분석에서 나타났다. 부산원전지역공동체에 비해서 기장원전지역공동체에 거주하는 지역주민이 상대적으로 원전으로부터의 심리적 거리를 더 가깝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실제 원전과의 물리적 거리를 고려할 때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장안지역이 아닌 기장지역의 응답자들이 부산보다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기장과 장안지역주민들 사이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아주 가까이 있는 지역인 장안지역 응답자들보다 오히려 중간정도 지점에 있는 기장주민들이 심리적으로는 원전으로부터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는 점은 후속연구를 통해 이러한 심리적 거리감의 작동 기제를 더욱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림 4>는 이상의 분석결과를 육각형의 평면에 펼쳐서 원전공동체별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육각형상의 좌표는 각 인식요소별 특성 비교를 위해 6개 요소의 측정지표 값들을 표준화한 결과들이다(z-score). 앞에서 밝혔듯이 전체적으로 그림에서 보여주는 공동체별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지만, 그림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장안원전지역공동체가 위험인식을 포함하여 징후경험, 활동경험 등의 측면에서 기장이나 부산원전지역공동체에 비해 낮은 값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게 부산원전지역공동체는 징후경험, 위험인식, 활동경험에서 모두 다른 공동체에 비해 높은 값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6가지 경험요소들에 대하여 각각의 원전지역공동체가 경험하고 체감하고 인식하는 수준은 각각 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래픽상의 결과들은 우리가 그동안 상정하였던 단일한 성격의 고리원전지역공동체와는 달리 여러 차별적 특성을 가진 여러 층위의 또는 복수의 원전지역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앞에서 살펴본 원전지역공동체 응답자들의 위험인식을 좀 더 세분하여 살펴보았다. <표 4>는 원전위험에 대한 인식(perceived danger)수준과 위험에 대한 심리적 불안수준(anxiety)에 대한 추가적 분석을 실시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위험인식수준은 평상시 고리원전이 어느 정도나 위험하다고 인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원전사고 발생가능성이 얼마나 높다고 보는지를 확인하고 두 조사 값을 곱해서 산출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변수는 응답자가 위험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인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분석결과 장안지역보다 부산지역, 기장지역보다 부산지역 거주자들이 원전위험을 높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 4>를 보면 위험인식수준에서 3개 지역별 평균차이는 매우 커서, 부산원전공동체의 원전위험인식수준이 장안에 비해 1.5배에 달하고 있다.
원전위험인식수준과 유사하게 고리원전으로 인한 심리적인 불안감 수준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장안공동체보다 기장공동체가, 기장공동체보다 부산공동체가 고리원전 사고에 대한 위험불안을 더 크게 느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지역주민들은 고리원전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적으로는 위험발생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으며, 이로 인한 심리적 불안 수준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위험인식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결과가 <표 5>에 나타나 있다. 지역변수, 성별, 연령, 거주연수, 결혼상태, 자녀수, 교육수준, 가구소득 변수를 독립변수로 하여 다중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지역변수가 가장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R2 값이 작아 설명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주요 사회경제적 특성변수들을 모두 고려한 상태에서도 부산지역에 비해 장안지역거주자들과 기장지역거주자들이 위험인식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p<.001).
<표 6>은 원전위험에 대한 심리적 불안정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 분석 역시 앞의 경우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지역변수, 성별, 연령, 거주연수, 결혼상태, 자녀수, 교육수준, 가구소득 변수를 독립변수로 하여 다중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심리적 불안감에 대해서도 지역변수가 가장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사회경제적 특성변수들을 모두 고려한 상태에서도 부산지역에 비해 장안지역거주자들과 기장지역거주자들이 위험인식수준이 낮았다(p<.001). 한편 지역변수 외에는 자녀수가 영향을 미쳤는데, 자녀수가 많을수록 위험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p<.05).
이와 같은 응답결과는 원전으로부터의 물리적 거리에 따라 달리 말하면 3개 원전지역공동체별로 원전위험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과 평가가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선 선행연구 검토부분에서 논의하였듯이 원전위험에 대한 인식태도에 대한 여러 연구들은 원전과의 근접성 즉 원자로와 거주지간의 거리가 지역주민들의 원전위험 인식태도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른바 NIMBY 가설은 원전과 같은 위험시설과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관련 위험물질이나 활동을 직접목격하게 됨으로써 해당시설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커져 강한 위험인식태도를 가지게 되고 해당시설에 대한 반대정도가 강화된다고 주장한다(Lima & Marques, 2005; Boholm & Löfsted, 2004).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은 원전을 포함한 위험대상시설과 근접할수록 오히려 해당지역주민들은 위험대상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고 해당 위험에 대한 노출이 증가함에 따라 위험인식과 우려하는 정도가 낮아져 관련 원전시설에 대한 반대정도가 약화되고 수용성이 증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Baxter & Lee, 2004; Bisconti Research, 2007; Freaudenson & Davison, 2007).
위에서 살펴본 응답결과 분석은 원전과의 근접성이 높을수록 오히려 원전위험인식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고리원전공동체의 경우 원전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위험인식이 감소하는 근접성의 논리가 작용하여, 원전인접지역에 거주하면서 매일 마주 대하는 원전위험에 대한 친숙함과 일상화의 경험이 근접한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보다 긍정적인 인식태도를 갖게 하였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은 고리원전 인접지역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인식태도는 고리원전이 지역사회에 가지는 위상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유사하게 투영되어 나타난다. <표 7>은 고리원전이 각각의 지역공동체에서 가지는 위상에 대한 응답자들의 평가결과이다. 즉 3개 지역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고리원전에 얼마나 경제적으로 의존하며(의존도) 고리원전을 얼마나 중요한 지역자원으로 생각하는지(중요도), 고리원전을 얼마나 지역사회의 부담으로 느끼는지(부담인식), 고리원전을 지역내 갈등유발 요소라고 생각하는지(갈등요인), 그리고 고리원자력본부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어느 정도라고 인식하고 있는지(영향력)를 분석한 결과이다. 3개 지역공동체별로 고리원전에 대한 의존도, 영향력 인식 그리고 부담인식 수준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부산원전공동체보다 장안원전공동체와 기장지역 원전공동체가 고리원전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와 지역내 영향력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는 반면에 기장과 부산지역응답자의 경우 고리원전을 부담으로 인식한다는 의견도 상대적으로 강하게 제시되고 있다. 특히 기장지역 응답자의 경우 고리원전에 대한 복합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리원전에 대한 경제적 의존성과 지역내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고리원전을 지역내 부담으로 평가하고 갈등유발 요인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은 양가적(ambivalent) 태도를 엿볼 수 있다.
3. 원전위험의 친숙화·일상화·정상화의 심리적 기제
원전시설에 인접하여 생활하는 지역주민들이 원전이나 원전위험에 대하여 어떠한 평가적 태도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가는 원전연구에 있어 관심 있는 연구주제이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많은 기존 연구들은 설문조사결과를 분석하여 객관적인 판단을 도출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결과적으로 지역주민들의 원전이나 원전위험에 대하여 가지는 긍정이나 부정적 인식여부 또는 그 정도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지만, 어떤 심리적 과정을 통해 그러한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는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기는 어렵다. 위의 설문조사 분석결과는 고리원전에 가장 근접한 장안원전공동체 지역주민들이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기장이나 부산원전공동체 지역주민들에 비해 원전위험에 대하여 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태도나 인식경향에 대해 Parkhill et al.(2010)이나 Venables et al.(2012)은 친숙화, 일상화, 정상화라는 원전근접지역 주민들의 심리적 인식과정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기제가 장안원전공동체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를 장안지역주민 6명에 대하여 실시한 바 있는 심층면접결과(양기용·김은정·김창수, 2018)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장안원전공동체에 오랜 기간 거주하면서 생활해온 6명의 면접자들은 공통적으로 원전위험에 대하여 그리 민감하지 않았다. 이들 역시 원전위험에 대한 친숙화(familiarization)와 일상화(ordinariness) 경험을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음을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위험인식태도를 가지게 된 경로는 다양하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원전인근지역에서 오랜 시간 살다보니 위험에 너무 익숙해져서 일상생활에서는 그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또 어떤 지역주민은 원전 전문가들을 신뢰하고 원전기술을 신뢰하기 때문에 원전은 안전한 것이라고 믿으면서 실제 살다보니 지금도 안전하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국의 원전사고를 전해 듣거나 방사성폐기물 처리문제가 지역에서 이슈로 제기되면 원전위험이 새삼스럽게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위험 자체가 일상화되는 특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지역주민들에게 원전위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으며 외부자극에 의해 소환될 수 있는 실제적 위험이지만 스스로 위험하지 않다고 확신하거나 너무 익숙해져 위험에 대한 민감성이 약화됨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원전위험과 관련된 공통점은 타 지역 사람들의 원전에 대한 위험인식 수준과 인식방식에 대한 불만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일종의 원전위험에 대한 정상화(normalization)라는 심리적 기제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원전위험과 같은 위험은 다른 곳에서도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사람들의 건강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현상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현상인데도, 왜 특정원전지역을 거론하며 그 위험만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강조하는 가에 대한 강한 불만과 반박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외부시각에 대한 불편함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신규로 전입하는 인구감소 아울러 전반적인 부정적인 지역이미지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고리원전에 대한 갈등경험 유무나 신규 원전건설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인터뷰한 대부분의 지역주민들에게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고리원전시설과 근접하여 생활하는 장안지역주민들보다 부산지역주민들이 원전위험에 더욱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설문조사결과는 장안지역주민들이 오랜 기간 동안 원전시설과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고 경험하게 됨으로써 갖게 되는 원전위험에 대한 친숙화와 일상화 기리고 정상화라는 심리적 과정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고리원전 건설초기에는 원전관련 지식과 이해도가 낮았지만, 다양한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원전관련 지식도 많아지고 위험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는 과정을 거쳤으나, 이후 현재에 이르면서는 일상을 통해서 원전위험이 익숙하고 친숙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전위험을 정상화하려는 심리작용도 나타나 이런 위험은 어디에나 있는 정상적인 현상임을 강조하면서, 장안원전지역공동체를 위험과 오염된 지역으로 동일시하는 외부시각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Ⅳ. 마치면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어온 에너지전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논의 중심에는 고리원전 1호기 폐로결정과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결정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결정의 공론화과정은 전체 여론을 대표하는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고 상충되는 관점과 주장이 자유롭게 논의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를 통해 에너지정책 결정과정의 절차적 합리성과 민주주의적 가치는 제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론화과정에서 해당 원전시설들이 현재 위치해 있고 추후 입지할 고리원전지역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견해와 고통이 충분하게 감안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 글에서는 지리적 경계 또는 고리원전 원자로와의 물리적 거리에 따라 3개의 원전공동체를 설정하고, 원전공동체별 원전경험, 원전위험인식, 원전관련활동, 개인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력 평가 등을 설문조사를 통해 조사하였다. 설문조사결과는 3곳의 원전지역공동체별로 차별적 특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원전위험인식에 있어 부산원전지역공동체의 원전위험인식정도는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상대적으로 장안원전지역공동체의 위험인식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결국 원자로와의 물리적 거리가 전반적인 원전위험인식에 유의미한 영향요소로 작용하여, 고리원전에 물리적으로 근접할수록 지역주민들의 원전위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감소하는 현상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조사결과는 위험인식의 차이에 근접성의 논리가 어느 정도 작동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원전시설에 근접한 장안원전공동체에서 원전시설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이와 같은 원전주변지역주민들이 가지게 되는 원전위험에 대한 인식태도의 심리적 기제로서 친숙함과 일상화논리가 작동할 수 있음을 지역주민들과의 면접결과가 시사하고 있다. 장안원전공동체 지역주민들에 대한 면접조사결과(양기용·김은정·김창수, 2018)는 오랜 기간 동안 장안원전공동체에 거주한 지역주민들에 있어서도 원전위험에 대한 Parkhill et al.(2010)이나 Venables et al.(2012) 등이 강조한 친숙화·일상화· 정상화라는 심리적 과정을 겪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 연구를 통해 고리원전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공동체가 단순히 고리원전 인근 지역(장안원전지역공동체)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 다양한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고리원전공동체가 확장되는 경로를 겪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장안원전지역공동체의 경우 실제적인 이해관계가 주요한 현안이슈로 제기되고 있으며, 기장지역의 경우 새롭게 유입된 젊은 세대들의 삶과 생활방식에서 원전위험에 대한 민감성은 더욱 증대되고 언제든지 새로운 갈등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에너지전환문제를 이미 중요한 사회적·정치적 아젠다로 받아들인 부산지역 시민들과 시민단체들과의 정치적인 합의도출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이 원전지역공동체가 안고 있는 이질성과 복잡성을 획일적인 정책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원전공동체별 이슈를 특성화하고 이에 대한 적실성 있고 투명한 정책대응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Acknowledgments
이 글은 부경대학교 자율창의연구비(C-D-2018-1387)지원을 받은 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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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오스틴)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고 계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국립부경대학교 행정학과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최근에는 지역기반 사회서비스, 지역공동체 이슈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최근 논문으로는 “복지재정분권의 현황과 국고보조금 제도 개편방안에 대한 모색”(2018), “서비스 유형 및 지역특성을 고려한 사회서비스 제공인력 근로환경 분석”( 2017), “돌봄시간지원정책의 이용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연구”(2016) 가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행정학박사학위(환경정책 집행영향요인의 분석, 2000)를 취득하고, 현재 부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학문적 관심분야는 관료제와 시민사회, 환경정책, 정부규제, 공공갈등 등이다. 최근 발간된 저서로는 「공공갈등과 행정이론」(2016)이 있고, 학술논문으로는 “지방정부 관료제의 혁신실태 진단과 처방”(2018), “전력사업 갈등영향분석의 경험과 교훈”(20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