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연구원 학술지홈페이지
[ Article ]
GRI REVIEW - Vol. 20, No. 2, pp.135-160
ISSN: 2005-834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May 2018
Received 10 Apr 2018 Revised 03 May 2018 Accepted 08 May 2018

지역정치와 다양성 : 직접민주주의 제도로서 추첨제의 활용 가능성 연구

임정관*
*경기도청 정책 전문관
Local Politics and Systemic Diversity : A Study on the Possibility of the Use of Sortition as Direct Democratic System.
Jeongkwan Lim*
*Gyeonggido Policy Special Advisor

초록

지방분권, 자치분권은 문재인 정부의 혁신과제 및 개헌의 주요 이슈로 미래 한국사회 변화의 중요 동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실질적인 자치분권을 위한 법·제도적 개혁 과제들로 주민투표, 주민발안, 주민소환 등이 제안된 상태이다. 이러한 제안들은 지방정부의 민주주의 운영방식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직접민주주의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는 추첨은 자치분권의 제도적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는 상황이다. 본 논문은 역사적 분석을 통해 추첨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하고, 선거 대의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해결에 있어 추첨제 활용이 필수적임을 선거 대의제 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추첨제에 대한 오해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이 오해는 18세기 미국과 프랑스의 대의제가 대의민주주의로 인식되는 역사적 과정과 그 궤를 같이한다. 시민의 대표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선거가 보편적인 수단으로, 민주적인 방법으로 인식되면서 추첨은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던 역사적 합리성을 잃고 ‘복권 추첨’과 같은 정도의 수준에서 이해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추첨은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제도이다. 소위 ‘대표의 실패’로 인식되는 선거 대의민주주의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추첨과 같은 민주주의 본질에 충실한 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 과거 아테네,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등에서 추첨은 자격 있는 시민들의 대표선출의 방식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에도 지역정치에서 현실성 있는 응용을 통해 사용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제도이다.

지방분권은 지역정치의 현실에 맞게 지역적 다양성이 정치제도에 반영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최소 행정적 단위인 기초지자체가 다양성의 단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성의 원동력은 주민들의 직접적 참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주민들의 직접 참여가 없는 정치제도는 민주적 제도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정치장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권력 행사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추첨이 지역정치의 다양성을 위한 선택지에 고려되어야하는 이유이다.

Abstract

Local decentralization or autonomous decentralization is one of top priorities of the incumbent government for innovation and maine issue of amendment of the Constitution, and at the same time is likely to become an significant driving force in changing the future of Korean society. Currently, suggested are proposals such as referendum, residents' initiative, and recall of elected officials as legal and institutional reform tasks for practical decentralization. These proposals have in common that they pursue direct democracy as a way of operating local governments' democracy.

However, sortition, which is regarded as the most direct democratic system in local politics, is being excluded from discussion on institutional autonomous decentralization. This paper addressed issues on prejudice over sortition through historical analysis and explained why it is necessary to use sortition to deal with the problems of representative democracy. Misleading about sortition stems from general misunderstanding of direct democracy which is in line with the historical process that the representative system in the U.S and France in the 18th century has been widely perceived as representative democracy. As election is recognized as a universal and democratic way of selecting representatives of residents, sortition is understood as a ‘lottery’ to some extent while losing its historical rationality.

Meanwhile, sortition is a system that institutionally ensures the core of democracy called ‘rule by the people.’ We have to seriously consider introducing a system such as sortition that is faithful to the nature of democracy so that we cop with the failure of election and representative democracy which is called as ‘failure of representatives.’ In the past, sortition was used to select representatives of citizens eligible for election in Athens, Rome, Venezia, Florence, and so on. Until now, it is a democratic system to be used in local politics through realistic and practical applications.

Local decentralization should be realized in a way of reflecting regional diversities in local politics by taking into account of the reality of local politics. The lowest level of local government of the minimum administrative unit should be a fundamental unit of measuring local diversity. For the more, driving force behind the diversity should come from direct participation of residents. A political system without direct participation of residents concerned might become a political device repressing diversities of democratic system. That is the reason why sortition, which guarantees direct exercise of political power by residents, should be considered as an option to realize and develop diversities of local politics.

Keywords:

local decentralization, local politics, sortition, representative democracy. direct democracy

키워드:

지방분권, 직접민주주의, 추첨, 대의제, 대의민주주의

I. 서 론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지방분권, 자치분권은 노무현 정부 이후 다시 한 번 중요한 국가 어젠다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정부는 출범 직후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국가의 고른 발전을 위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혁신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1)제2 국무회의 도입과 국가사무의 획기적 지방 이양 2)자치분권의 제도적 기반 확보 3)국가균형발전 거버넌스 및 지원체계 개편 4)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분권 추진 5)주민직접참여제도 확대 및 마을자치 활성화를 주요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국정기획자문위원회, 2017). 지방분권은 정부의 혁신과제 뿐만 아니라 ‘지방분권 개헌’이라는 이름으로 미래 국가의 틀을 바꿀 개헌의 중요내용으로 제시되고 있다. 의도는 지방분권, 자치권 확대를 헌법에 포함시켜 그 가치를 국민의 기본권, 국가 정체성의 수준으로 올리자는 것이다. 이는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 지방자치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가 자치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라는 어제 오늘의 현실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1) 실질적 지방분권은 한국사회가 피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이를 통해 그 동한 한국사회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사회적 시도들이 이루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오랫동안 지방분권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있어왔다. 지방분권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정착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답들이 많이 축척되어온 상황이다(이기우, 2016; 주성수, 2009). 정부가 발표한 자치분권 혁신과제의 세부내용도 일자리 창출, 규제 완화와 같은 국가 ‘기능’ 중심사무의 포괄적 이양, 자치입법·행정·재정·복지권 등 4대 자치권 보장, 강력한 재정분권 추진, 주민발안·주민투표·주민소환의 활성화 등으로 그 동안 학계에서 지방분권과 관련해 제시되었던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앞에서 언급된 법·제도들의 검토나 보완보다는 개념적 차원에서 자치분권이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성으로 직접민주주의를 검토하고, 지역정치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인 ‘추첨’을 제안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역사적 분석을 통해 추첨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하고, 선거 대의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의 근본적 해결에 있어 추첨제 활용이 필수적임을 선거 대의제 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사실 복권과 같이 ‘운’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공공재인 정치권력을 위임한다는 주장에의 거부감은 당연한 것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추첨제는 이와 같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잠시 뒤로하고 시간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민주주의의 가치인 자유, 평등, 대표성, 공공선, 합리성, 시민덕성 등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적실한 제도이다(이지문, 2012; 정주환, 2016). 또한 추첨형 대의제는 자기 지배의 실현에 있어 우월적인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제도이다(서경석, 2018).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들이 보여주고 있는 추첨제의 긍정적인 측면을 지방분권과 연계시키는 연구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추첨제의 집단단위에 적용 연구로는 ‘협동조합공동체’ 사례가 있다 (민영수, 이지문 2013). 하지만 추첨제의 지방 행정적 단위의 응용 연구라고 보기는 힘들다. 본 연구의 의의는 실질적인 지방분권의 결과물로 ‘지방정부 행정적 단위에서 추첨제 적용’의 타당성을 실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지방분권과 직접민주주의의 개념적 연계를 살펴보고, 대의제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대의제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보는 이유는 현재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를 통해 인식되게 된 역사적 상황을 설명해야지만,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을 바로 잡고, 지역정치에서 ‘추첨’의 활용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II. 지방분권, 지방자치, 직접민주주의

개념적으로 지방분권과 직접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다. 지방분권은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함으로서 권력을 나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지방분권을 통해 확대된 권력을 가진 독립적인 지방정부가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으로써 직접민주주의를 선택할 수도 있고, 대의(간접)민주주의를 선택할 수 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방분권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민직접참여제도 확대 및 마을자치 활성화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방분권은 실질적 지방자치를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이다. 결국 어떤 지방자치인가에 따라서 지방분권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달라질 수 있다. 지방자치는 중앙집권적 권력 분산의 결과로 반중앙집권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반중앙집권 방향성의 종착점이 지방을 구성하는 주민인지 아니면 중앙과 주민 사이에 새로운 소(小)중앙인지에 따라 지방분권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 간 자율권의 갈등과 유사한 갈등이 광역지차체와 기초지자체 사이에서 나타나면서 광역지자체가 소(小)중앙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알려져 있는 지방자치는 기본적으로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관련된 문제들을 관련 주민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준다는 의미가 강하며, 결국 행정적으로 가능한 최소 단위(마을)에서 실질적 주민참여 자치가 이루어 질 수 있는 지방분권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지방분권은 정치적 다양성이 성장할 수 있는 틀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획일적인 지방정부형태, 의회형태, 선거제도, 조세제도를 벗어나 지역의 특색에 맞는 법·제도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현황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법·제도 형성에 참여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들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의 정치 제도적 다양성의 원동력은 주민들의 직접적 참여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의 직접 참여가 없는 정치제도의 도입은 정치인들을 위한 단기적인 정치기구라는 한계를 넘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사례로 ‘경기도 연정’을 언급할 수 있다. 경기도 연정은 2014년 말 시작 당시 지자체 ‘정치 실험’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도민의 참여와 법·제도적 기반 없이 도지사의 정치적 의지와 도의원들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참여로, ‘정치 실험’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3년 반이 지나 성과 없이 마무리 되었다. 연정이 지속될 수 있는 법·제도의 틀도 만들지도 못했으며, 현실적으로 도민들에게 어떤 혜택이 있었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경기도 연정은 지방정치의 특색 있는 정치제도 만들기의 시도이었지만, 결론적으로 주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은 정치인들 간의 합의로 만들어진 지방정치의 정치제도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 지방자치 운영과 관련하여 직접민주주의적 제도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제로 한정할 수 있다. ‘주민발안’은 주민들이 그들이 뽑은 대표자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법안(조례)을 제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며(제정권), ‘주민투표’는 대표자들이 만든 법에 대한 거부를 투표를 통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거부권)를 의미한다. ‘주민소환제’는 주민들이 선택한 대표가 주민들의 일반적인 의지와 다른 행동을 할 때, 그들을 소환할 수 있는 권리(소환권)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제도들은 기존 대의민주주의 제도, 즉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이를 보완하는 제도로서 그 역할이 주어진다. 본 논문에서는 선거제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는 이 세 가지 제도 외에 선거를 직접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추첨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추첨제’를 직접민주주의와 연계하는 것이 낯설 수도 있지만, 사실 ‘추첨’은 역사적으로 직접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제도였으며, 이를 통해서만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를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직접민주주의에 있어서 추첨이 가진 의의를 살펴보기 전에 현재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인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검토가 필요하다.


III. 대의민주주의

1. 대의제와 민주주의

기본적으로 대의제가 18세기 미국 혁명(1776년), 프랑스 혁명(1789년)을 통해 과거의 구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제도로서 논의되고 실행되려 했을 때, 대의제는 민주정에 반대되는 개념이었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인 몽테스키외(1689~1755)는 <법의 정신>에서 각각의 통치체제를 설명하면서 권력이 한 사람의 손에 집중되는 군주제와 달리 공화제는 권력이 민중에게 속하는 체제로 설명한다. 이어 그는 공화제를 두 가지로 구분을 하는데 공화제에서 집단으로서 인민 전체가 주권을 가지면 민주주의가 되며, 주권이 일부 인민의 손에 집중이 되면 소수특권제가 된다고 주장했다(Montesquieu, 2016: 32-35). 몽테스키외의 민주주의제와 소수특권제의 구분은 이후 소수특권제의 정치적 형태가 구체화되고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 비판을 통해 명확해진다.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 앙시앵 레짐 시기의 왕과 귀족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된 미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 계층은 당연히 공화제를 갈망했다. 구시대 지배층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확실한 방법은 왕이 없는 통치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새로운 지배계층으로서 혁명의 정신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어떤 식의 공화제이어야 하는가에 있어서 그들의 선택은 민중이라는 혁명의 정신보다는 계급적 이익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사회ㆍ경제적 자산을 바탕으로 혁명전 이미 왕정치하에서 행정직이나 정치관련 직무를 맡아보면서 구체제 속에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Reybrouck, 2013: 116). 새로운 정당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고 싶었던 그들은 일반 국민들이 권력의 주인임을 이야기하면서도 일반 국민들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개인적 역량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월등한 능력을 가진 자신들이 국민들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몽테스키외의 분류법에 따르면 민주주의 보다는 소수특권제를 옹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새로운 시대의 부르주아 엘리트들에게 있어 일반국민이 지배하는 민주주의는 새로운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제도였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은 민주주의를 “동요와 논쟁으로 가득 찬 구경거리”로서, “일반적으로 명이 짧은 것만큼이나 과격한 죽음을 맞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Madison, 1787a).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 또한 “민주주의는 결코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오래지 않아 쇠퇴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기진해서 죽음을 초래한다. 이제껏 자살에 이르지 않은 민주국가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주장했다(Adams, 1851). 프랑스의 경우 혁명의 선봉에서 1차 국민의회 구성원으로 참가한 앙투안 바르나브는 민주주의를 “가장 증오할 만하고, 가장 전복적이며, 민중 자신에게도 가장 해가 되는 정치체제”라고 비난 했다(Depuis-Deri, 2013: 115).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새로운 엘리트 지배계층이 주장한 것은 ‘대의제’였다. 대의제는 민주주의와 다른 통치체제로 민주주의보다 본질적으로 우수한 체제였다. 제임스 메디슨은 대의 정부에서는 선택된 시민 집단이라는 매개를 거치면서 대중의 견해가 정제되고 확대되는 효과를 가진다고 했다. 또한 선출된 집단의 현명함은 나라의 진정한 이익을 잘 분별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애국심과 정의에 대한 태도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나라의 진정한 이익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Madison, 1787b). 이와 같은 주장은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전제한다. 선출된 통치자들은 현명하며,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어 나라의 진정한 이익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상적인 엘리트의 존재를 전제함에 따라 대의제는 민주정보다 훌륭한 통치체제가 되는 것이다. 반면 시에예스는 대의제가 민주정보다 우월한 이유로 피통치자보다 질적으로 뛰어난 대표들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다. 그는 대의제가 개개인들 경제적 생산과 교환에 기반을 두고 있는 “상업사회”의 조건에 적합한 정부 형태라고 믿었다. 상업 사회에서는 시민들이 개인들의 경제적 생산을 이유로 공공 업무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공공 업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Manin 1997: 15).

이와 같이 18세기 대의제가 미국과 프랑스에서 인류정치사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의 상황을 보면 현재 많은 사람들이 대의제를 민주주의의 하나의 유형으로 보는 시각과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비교를 위해서는 어떻게 대의제가 민주주의의 하나의 유형으로 인식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2. 대의제가 대의민주주의로: 선거의 민주화 현상

18세기의 대의제는 구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모델이었다. 대의제를 통해 바꾸어야할 구체제의 특징 중에 하나는 권력의 세습이었다.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권력 세습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통치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근대 대의 정부의 특징은 권력이 세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력이 세습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권력의 정당성은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로서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대의제를 제임스 메디슨은 ‘공화정’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있어서 공화정은 그 모든 권력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전체 인민으로부터 나오며 대의제를 통해 운영되는 정치체제이다(Dahl, 2001: 251-254). 공화정에서 모든 권력이 전체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주기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선거’였다. 하지만 정말 선거라는 것이 모든 권력이 전체 인민으로 나온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보여주고 증명하기에 충분할 것이었을까? 오히려 미국 공화정은 전체 인민의 권력이 구현되는 방법을 선거로 축소시키면서 동시에 인민의 권력 행사 구현을 방해하는 많은 제도들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투표를 할 수 있는 참정권은 전체 인민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재산이 있는 소수 백인 남자들에게만 참정권이 허용되었을 뿐 여성, 원주민, 흑인들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축소된 인민을 통해 선출된 대표들이 모인 하원을 견제하기 위해 상원이라는 귀족적 의회를 설립하였다. 이는 공화정이 실천적 면에서 인민의 의지에 기반하는 인민의 정부가 아니라 특권과 재산을 중요시하고 대중을 공포의 대상으로 보면서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고자 했던 귀족정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공화정의 이와 같은 특징은 비단 미국만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제헌의회는 ‘능동적인’ 시민과 ‘수동적인’ 시민을 구분했는데 이중에 능동적인 시민만이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능동적인’ 시민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3일치에 해당하는 임금을 직접세로 지불해야했다. 물론 여성, 노예, 극빈자, 유랑민, 수도승은 투표를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국한되었던 미국보다 참정권이 더 광범위하게 인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있었던 선거 대의제의 반민주적인 또 하나의 특징은 누가 대표로 선출될 수 있는가에 있었다. 1978년 제헌의회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납세금액이 적어도 은화 1마르크가 되는 사람만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될 수 있음을 결정하였다. 이는 500일 임금과 맞먹는 금액이며, 단지 인구의 1%만이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Manin, 1997: 130). 경제적 부에 따라 대표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누구나 국민의 대표로 선출될 수 있고, 그럼으로 ‘인민에 의한 지배’라는 핵심 이념을 실천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었다.

선거 대의제가 군주제를 대체하면서 가지고 온 사회의 변화는 ‘세습 없는 귀족정’이었다. 과거 왕과 귀족을 대체할 새로운 귀족은 제한된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들은 그들 스스로 ‘인민이 뽑은 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귀족정치에 대한 과거의 전통을 잊지 못했다. 그러나 선거가 세습을 몰아냈다는 사실에서 선거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특징으로 보이기도 한다. 선거에 기반한 대의 공화제가 19세기 20세기에 걸쳐 민주주의로 불러지게 된 계기를 마련한 사람으로 알렉시 드 토크빌을 이야기할 수 있다. 19세기 지성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토크빌이 19세기 초 미국에 9개월 체류하면서 쓴 책 <미국의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미국의 공화정을 민주주의라고 인식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된다.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그는 미국에서 ‘정치적 권리’라는 개념이 가지는 위상과 그로 인해 다른 나라들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던 시민의 참여기회와 조건의 평등에 큰 기대를 하게 된다(Tocqueville, 1840: 319-322). 그러나 그도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선거가 다가오면 선거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일한 큰 사건이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각종 음모가 판치고 사회적 동요만 심해지며 시민들의 분열이 발생하는 것을 걱정했다. 또한 대통령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선을 위한 최선을 다하고 감정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한다고 비판한다(Tocqueville, 1840: 200-204). 토크빌을 통해 미국식 공화정이 민주주의로 불리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지만, 정작 토크빌은 선거라는 정치시스템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선거 대의 공화제가 유럽에서 민주주의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1830년 독립한 벨기에인들이 작성한 헌법이었다. 벨기에 헌법은 왕권을 인정하였으나 왕권은 헌법과 의회의 권한에 종속되었다. 투표권은 정액지대 납입자에게만 부여되었지만 그 기준이 프랑스보다는 느슨했고 미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직접선거제를 도입했다. 또한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었다. 반면 신생국가내에서 기득권 세력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상원제도를 도입했다. 상원 자리는 오직 상당한 재산을 보유한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었다. 1831년 이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많은 근대국가들이 벨기에 헌법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헌법 작성의 교범으로 사용하였다. 스위스, 독일, 스페인, 그리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기 등 많은 국가들의 헌법을 통해 벨기에 헌법은 복제되었고 하나의 규범으로 정착되었다(Reybrouck, 2013: 132-135). 요약하면 미국식 선거 대의 공화제에 토크빌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어주었고, 벨기에 헌법은 이와 같은 ‘민주주의’가 유럽에서 기준 모델이 되도록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선거 대의 공화제 민주주의’ 모델은 서구중심주의의 흐름을 통해 전 세계의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형태로 자리잡아갔다. 선거가 민주주의 모델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모든 민주주의 발전 논의는 민주주의 원칙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투표권 확장으로 그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선거제도의 도입과 투표권의 확장이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선거는 민주주의를 넘어 인권과도 연관이 된다. 1948년 공표된 세계인권선언은 “국민의 의지는 국가 공권력의 권위를 정립하는데 토대가 된다. 이 의지는 정기적으로 치르도록 정해져 있는 정직한 선거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제적인 권위를 가진 인권 선언을 통해 우리는 선거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와 그 보편성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국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선거의 민주화 현상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민들의 1인 1표라는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갈등과 희생이 있었다. 이 정치적 권리의 획득 과정을 통해 많은 사회적 변화도 발생했다. 사람들은 이를 민주적 변화, 역사적 진보로 생각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모든 시민의 1인 1표라는 동등한 정치적 권리는 분명히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와 같은 방법적 수단이 민주주의의 전부인 것처럼 오도되었다는 것이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결과적으로 귀족주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논의를 제외하고 ‘선거권’의 확산에만 집중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왜곡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왜곡된 민주주의의 논의에서는 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해결책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IV. 추첨의 역사적 사례와 의미

대의제는 기본적으로 대표, 통치자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대표를 뽑는가’가 중요한 논의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선거 이외에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 있을까?’ 할 정도로 선거는 대표 선출의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방법으로 사용된 것이 선거만은 아니었다. 선거가 아닌 대표 선출 방식으로는 추첨이 있었다.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대표를 추첨을 통해서 뽑는다는 것은 자칫 농담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에게 추첨 혹은 제비뽑기가 익숙한 상황은 어떤 행사에서의 ‘경품 추첨’이나 ‘복권 추첨’ 같은 것이다. 추첨은 사람의 능력과 상관없는 ‘운’에 의한 결과로 인식되기 때문에 대표를 운을 통해 뽑는다는 것은 대표 선택을 희화화 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대통령, 국회의원이 경품이냐, 그게 아무나 되는 것이냐’ 하는 핀잔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추첨에 의한 대표의 선출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합리적 방법이며, 오랫동안 사용된 만큼 그 장점이 경험적으로 검증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추첨을 통한 대표선출이라는 방식을 들었을 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거부감은 역사적 사례에 바탕을 둔 판단은 아니다.

추첨을 통한 대표선출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발견되고 이탈리아 도시 공화국이었던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 지속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아테네, 로마(로마의 경우는 대표선출이 아닌 입법 사법결정과 관련에서 사용), 베네치아, 피렌체는 당시 최고의 (도시)국가들로서 이런 국가의 전성기 때 추첨이 중요한 정치 제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경우 민회를 제외한 500인 평의회, 민중법원, 대부분의 행정관들을 추첨으로 뽑았다. 500명의 평의회는 법안을 작성하고 민회의 개최를 준비했으며 재정과 행정을 관리했을 뿐 아니라 외교까지 감당하는 아테네 통치체제의 중추가 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민중법원에서는 6,000명의 시민의 신청자 중에서 추첨을 통해 배심원과 재판장을 선출하였다. 행정관직의 경우 700개의 관직이 있었는데 이중 600개 정도를 추첨으로 선출하였다. 로마 시대 때 추첨은 아테네에서 사용되었던 것과 같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대표 선출에도 사용되지 않았으나 민중 의회에서 입법과 사법 투표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반적으로 로마의 통치체제는 민주정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로마의 정치 체제는 군주정,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의 특성들을 혼합한 것으로, 집정관과 행정관은 군주제적 요소였고, 원로원은 귀족제적 요소, 그리고 민중의회는 민주제적 요소로 생각할 수 있다. 추첨은 의회에서 누가 첫 번째로 투표해야 할지를 결정하는데 사용되었다. 각각의 부족으로 구성된 민중 의회에서 투표 결과는 한 부족이 투표를 마치자마자 다른 부족이 계속해서 투표하는 과정에서 발표되었는데 투표는 과반수에 의해 법안이나 판결이 결정되자마자 중단되었다. 개시 투표는 종교적으로 투표의 최종적 결과를 미리 알려준다고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도 규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투표 절차의 특수성으로 개표순서가 중요했고 개표순서는 추첨을 통해 결정했다(Reybrouck, 2013: 71-75).

베네치아의 경우는 여러 세기에 걸쳐서 도제, 나라의 수장인 총독을 결정할 때 추첨이 사용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몇몇 강력한 귀족 가문들이 통치하는 과두체제였다. 도제는 죽을 때까지 영구직이었지만, 왕정과 같이 세습은 불가능했다. 세력 있는 가문들끼리 권력을 향한 다툼과 갈등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추첨이 사용되었던 것이다(Reybrouck, 2013: 100). 피렌체 공화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피렌체의 경우, 귀족 가문들이 도시국가를 지배했던 베네치아와는 달리, 상층 부르주아들과 강력한 동업자 조합이 지배하는 공화국이었던 특성상 각종 직위에 더 개방적이었다. 따라서 국가의 최고 지도자뿐만 아니라 정부와 입법평의회, 정부 위원들도 추첨으로 선출하였다(Reybrouck, 2013: 105-106). 이와 같은 추첨을 통한 대표선출의 방식은 베네치아와 피렌체 뿐 아니라 당시 다른 여러 도시 국가들에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추첨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대표 선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와 추첨은 서로 배타적인 제도가 아니었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선거와 추첨은 같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위에서 예를 든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는 추첨 전 선거를 통해 추첨을 통해 선출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줄였다. 요컨대 후보의 자질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위해 선거라는 제도를 사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와 추첨은 그 특성상 구분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추첨은 민주주의적이며 선거는 과두정치적이라고 했다(천병희역, 2009: 470). 그가 추첨을 민주주의적이라고 한 이유는 추첨이라는 것이 자유라는 개념을 실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며,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 원칙이 자유였기 때문이다. 추첨을 통해 자유는 시민들이 번갈아 가면서 통치하는 자가 되고 통치 받는 자가 되면서 실현된다. 모든 시민이 이 두 위치에 번갈아 가며 위치할 수 있을 때 자유의 한 형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선거에서는 시민들이 관직에 진출할 동일한 기회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시민이 가지고 있는 재화, 명예에 따라 기회는 달라지며, 그런 재산을 통해 권력이 배당되기 때문에 과두정치적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선거와 추첨에 대한 구분은 근대에도 이어진다. 몽테스키외와 루소 역시 선거와 추첨을 각각 귀족정과 민주정으로 연결시킨다. 몽테스키외는 귀족정이 선거와, 그리고 민주정이 추첨과 어울린다는 것을 하나의 법칙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추첨은 민주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평등의 원칙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추첨은 모든 시민들에게 공공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에 귀족정에서 추첨은 귀족들 사이에 혐오와 시기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고 이야기한다(Montesquieu, 1748: 32-41).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정부를 구성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방법으로 선거와 추첨, 두 가지를 이야기하면서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Rousseau, 1762: 140-143).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대표를 선출하는데 있어서 선출 방식에 따라 추점은 민주정, 선거는 귀족정으로 구분되는 것이 오래된 역사적 관습이었다. 어쩌면 당시 미국과 프랑스에서 선거가 대의제 대표 선출의 방식으로 사용된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의제가 민주정보다 바람직한 통치체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적인 성격이 결핍된 선거를 통치수단으로 쓴다 한들 어떤 모순점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추첨을 사용했다면 이는 그들이 구상하는 통치체제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그들의 새로운 정부를 디자인하는데 큰 오점이 되었을 것이다.


V. 직접민주주의 도입의 필요성

1. 아테네 민주주의 사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는 직접민주주의의 사례로 언제나 이야기되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사례로 이야기되는 이유는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민회를 개최하고 국가와 관련된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와 결정이 직접민주주의 중요한 요소임에는 의문이 없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이와 같은 민회뿐만 아니라 그들이 대표를 뽑는 방식과 교체하는 방식에도 있다. 아테네에서도 시민들의 대표를 선출했다. 즉 대의제를 운영했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있기 마련이다. 지도자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 아테네에서도 그들을 이끌어 나갈 대표가 필요했고 존재했음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테네에서의 이와 같은 대의제의 운영이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보지 않는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민회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이해하는 것은 현대 대의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민회는 약 6,000명의 시민들이 한 곳에 모여, 정치적 의견을 발언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법안과 소송을 제안, 의결하는 기관이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법안을 표결하고 고위직 공무원을 선출하였다. 그런데 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민회는 중요한 권력기관이기는 했지만 상당수의 주요한 권력은 민회가 아닌 다른 기관들이 가지고 있었다. 주요한 기능들은 선출된 행정관과 500인 평의회, 민중법원에서 수행했다. 이 세 가지 기관의 공통된 특징은 추첨을 통해 선발된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었다는 점이다. 아테네의 행정부를 구성했던 700명 정도의 행정직 중에서 600명 정도가 추첨을 통해 충원되었다. 30세 이상의 시민들 중에 행정관이 되고 싶은 사람은 지원을 해야 했다. 이는 30세 이상의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이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행정관으로 선출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추첨기계에 넣고 추첨의 결과에 따라 행정관직 수행의 여부가 가려졌다. 행정관의 임기는 1년이었으며 같은 직책을 한 번 이상 할 수는 없었다. 동일한 직책이 아닌 경우 다른 행정직에 지원할 수 있었다. 행정관 선출이 추첨과 1년 단위의 로테이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모든 시민이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추첨에서 이름이 뽑힌 시민은 직무 수행 전에 일종의 자격심사를 받아야하는데, 이 자격심사는 추첨으로 뽑힌 자의 능력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군복무는 마쳤는지 와 같은 기본적인 시민의 의무를 수행했는가를 심사하는 것이었다. 행정관은 민회와 민중법원의 감시를 받았으며 임기 중에 시민들은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직무정지를 요구할 수 있었다. 행정관의 불신임 투표로 불신임 제안이 투표로 통과되면 사건은 법정에 회부되어 유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행정관은 임기가 끝나면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추첨으로 선출된 행정관에 대한 이와 같은 제도는 추첨으로 무능력한 사람이 운으로 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소시키는 장치로 생각할 수 있다. 항시 이루어지는 행정관에 대한 감시와 결산 보고서의 제출, 자격 심사는 행정관으로 지원하기 전에 자기 검열과정을 갖도록 했을 것이며, 능력에 대한 평가로 행정관으로서의 기준을 시민들 스스로 습득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700명 중 나머지 100명 정도는 민회에서 투표로 선출되었다. 아테네인들은 업무 수행 능력이 중요한 직책, 예를 들어 최고 군사령관, 최고 재정 담당관 같은 직책은 선거를 통해 충원하였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행정관은 추첨을 통해 선출된 행정관들과 그 임기가 1년으로 같았지만, 동일한 직책을 연속해서 수행할 수 있었고 임기에 대한 제한도 없었다. 예를 들어 기원전 4세기 장군들 중에 가장 유명한 포키온은 45년 동안이나 그 직책을 맡았다.

시민 대표 평의회인 500인 평의회는 일종의 시민 대표 협의체로 민회를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평의회의 위원들도 1년 임기로 추첨을 통해 임명되었는데, 두 번 이상 평의회 위원이 될 수 없었다. 평의회의 의석은 지역의 인구에 비례해서 할당되었다. 평의회가 개최되는 날 위원들은 자신들이 대표하는 지역에서 수당을 지급받았는데, 이는 사람들이 평의회의 참여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해 때문에 정치 참여를 하지 않으려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런 금전적 보상은 평의회 위원 뿐 아니라 행정관, 재판관, 배심원, 나중에는 민회 참석자에게도 이루어졌다. 평의회는 법적으로 최고 권위 기관이었다. 평의회는 직접적으로 민회와 연결되어, 민회에서 어떠한 논의들이 이루어져야 할지를 미리 토론했다. 민회가 의결한 법령의 절반 정도는 사실상 평의회가 제출한 법안을 비준하는 것이었다. 평의회는 외교 업무 또한 수행했는데 외국과의 협상 결과를 민회에 제출했으며, 해군과 해상무역의 행정을 수행함으로 중요한 군사적 기능도 담당하였다. 또한 재정 업무를 포함한 주요 공공 업무와 다른 행정관에 대한 포괄적인 감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추첨으로 임명된 평의회의 역할은 현재 우리의 시스템에 비교를 한다면 의회와 행정부 내의 외교, 군사, 재정, 감사의 역할 등을 합친 것과 같다고 하겠다.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던 또 하나의 기관은 민중법원이었다. 민중법원을 운영하기 위해서 매년 30세 이상의 지원자 중에서 6,000명을 추첨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1년 동안 배심 재판소를 구성했다. 매일 여러 법정이 동시에 열렸고 6,000명의 추첨자 중에서 당일 법정에 참여하고 싶은 시민들은 법정에 나가 다시 한 번의 추첨을 통해 그 날 필요한 재판관이나 배심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재판관들은 또 다른 추첨을 통해 어느 법정에 들어갈 지를 결정했다. 민중법정이 가진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능은 민회에 제출된 법안에 대해 비합법성을 판결하는 것이었다. 민회에서 법안을 최초로 발의한 발의자를 기소하는 것으로, 설령 그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해도 비합법성의 문제로 기소될 수 있었다. 민회에서 이미 통과된 법안이라도 이의 신청이 들어오면, 법안의 효력은 판결이 날 때까지 중지된다. 비합법성에 대한 기소는 법안의 절차적 기술적 문제뿐 아니라 법안의 내용, 즉 기존 법률에 저촉되거나,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공공의 이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비합법성의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그 절차는 민회의 방식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민회보다는 더 적은 수의 배심원의 참여와, 쌍방의 토론을 통해 깊이 있는 심사가 오랜 시간동안 가능했다. 투표는 비밀투표가 원칙이었다. 만약에 법정의 판결이 기소자(민회의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의 편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법안에 대한 민회의 결정은 폐기되고 그 법안을 발의했던 발의자는 벌금형을 받게 된다. 기소자 또한 그의 고발이 투표자 가운데 5분의 1이하의 표를 얻게 되는 경우에는 상당 금액의 벌금을 받았다. 이와 같은 민중법정의 기능은 법정이 민회의 활동에 정치적 통제가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민회에서 법안을 발의하고자 하는 민회원은 이와 같은 정치적 부담을 항상 고려해야 했다. 민중법정은 탄핵에 대해서도 심사를 했다. 탄핵에 대한 고발은 우선적으로 민회에 제출되었는데 탄핵에 대한 검토가 법정에서 이루어졌다. 민중법정이 가지고 있는 일부 권력은 국가의 최고 권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바로 민회의 결정 사항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재 헌법재판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2. 직접민주주의와 선거 대의민주주의 관계

일반적으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대의민주주의와의 제도적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이루어진다. 대의민주주의가 인민, 시민을 대표해 선출된 대표가 시민 대신에 공동체와 관련된 문제를 결정하면서 운영되는 반면에, 직접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대표를 선출하지 않고 직접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즉, 인민을 대표하는 대표자가 있고 없느냐에 따라서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구분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분은 하나의 제도적 차이를 가지고 본질적인 차이까지 재단해 버리는 성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의제인 추첨제는 이와 같은 성급함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도적 모델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라고 불린 적이 없다. 민주정과 민주정이 아닌 것으로 구분되었을 뿐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구분 자체가 없었다. 사실 직접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선거 대의제가 민주주의로 인식되면서 이후 이와 구별을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 대의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직접민주주의라는 민주주의의 한 분류가 만들어 진 것이다. 그리고 앞의 아테네 사례에서 보듯이 개념적으로 만들어진 직접민주주의를 역사적 사례를 근거로 설명하면서 오히려 역사적 사례가 잘못 이해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직접민주주의를 단순한 ‘대표유무’의 차이(대표유무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 아니다.)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찾아 그것을 현실화했던 제도의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직접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선거 대의민주주의의탄생 이후 이와의 비교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표 없이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로 모든 일을 처리했던 방식을 직접민주주의라고 부른다면 이와 같은 직접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의 대의민주주의와 다른 형태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과거의 민주주의 형태를 우리가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른다면, ‘직접’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가 바뀌어야한다.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뿐만 아니라 권력 행사의 대의적인 면까지 고려해야 하며, 현재 대의제와 질적으로 달랐던 과거 아테네 대의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직접민주주의에 포함시켜야한다.

링컨의 유명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치’의 정의를 적용한다면 직접민주주의는 “인민의”(of the people) 지배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다. 선거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의 투표 (by the people)로 선택된 대표가 인민들을 위한 정치 (for the people)를 하는 제도이지만 인민의 지배 (of the people)에 있어서는 취약하다. 선거 대의민주주의에서 일반 국민이 국회의원이 되는 확률은 정치 엘리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일반 국민이 피통치자가 되면서 통치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귀족정이 되어버린 선거 대의민주주의 래서 인민의 지배는 귀족의 지배로 치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테네의 대의제가 현재 선거 대의민주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점은 추첨을 통해 모든 시민이 행정관, 배심원, 재판관이 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현대 선거 대의민주주의가 간접민주주의인 이유는 선거에 의해서만 선출된 통치자가 인민을 다스리기 때문이며, 아테네의 대의제가 직접민주주의로 이해될 수 있는 이유는 추첨을 통해 선출된 통치자가 인민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현재 직접민주주의는 왜곡되어 인식되고 있는 면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직접민주주의를 여론조사에 의한 정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결과대로 따라하면 그것이 현대적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생각은 그 근저에 직접민주주의가 비합리적이라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 사안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여론을 따라 국가적 사안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론조사에 의한 정치는 직접민주주의와 관련이 없다. 우선 여론조사라는 것은 현대 선거 대의제의 장치이다. 대표들이 정책을 결정하기 전 일반 국민들의 의사를 참고하기 위한 정보이다. 그것도 모든 국민에게 그들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도 ‘대표’된 다고 생각되는 표본의 의사를 수학적으로 분석해서 내놓은 결과이다. 뿐만 아니라 확률로 설명되는 여론조사의 결과는 항상 오류와 왜곡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론조사를 국민의 뜻을 생각하는 것은 선거 대의제적 사고 틀 안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보는 편의주의에 기반한 사고이다. 즉 ‘대의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 = 대표/직접참여’ 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기초한 사고이다. 앞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했다시피 직접민주주의 또한 대표를 선출해 운영하는 제도이다.

여론조사가 아테네식 직접민주주의에 따라 직접민주주의 성격을 가지기 위해서는 여론을 형성한 사람은 민중법원에서 다시 한 번 여론의 공익성에 대해 심도 깊은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직접민주주의는 결정, 심의, 책임이 모든 것이 시민들이 참여로 이루어지는 제도이다. 특히 시민에게 심의와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 제도는 직접민주주의적인 제도라고 할 수 없다. 직접민주주의적 제도는 선거 대의제도와 달리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인민의 지배, 달리 이야기하면 인민이 통치자이면서 피통치자라는 개념, 통치와 복종을 번갈아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제도를 의미한다.

3. 선거 대의민주주의의 실패에 대한 두 가지 시각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사회적 가치들의 권위적 배분” (the 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 for a society)으로 정의한다(Easton, 1953). 이와 같은 정치의 정의에 민주주의가 결합을 한다면 사회적 가치들의 권위적 배분의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있고, 시민들의 뜻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것을 제도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직접민주주의와 선거 대의민주주의이다. 하지만 현재 직접민주주의는 예외적인 사례로, 선거 대의민주주의가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형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선거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그의 대안으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적 운영시스템을 실천하는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이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같은 정당들이 각국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획득해 나가고 있다. 소위 ‘대의민주주의 실패’는 사회적 가치들의 권위적 배분의 과정에서 시민들이 배제된 채, 정치 엘리트들의 정치 이익이 배분의 목적과 결과가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경우, 카르텔을 형성한 정치 엘리트들의 집단 정치로 작게는 국회의원들의 만성적인 국회 태업부터 크게는 대통령의 국정농단까지 민주주의 실패의 사례를 중단 없이 생산해 내고 있다.

시민과 대표자들의 정치거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발생하는 선거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처방은 선거 대의민주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따라 해결책을 달리한다. 대의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차선으로 보는 시각이다. 시공간의 제약에 따른 현실적인 이유에서 선거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지만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기본이념은 항상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루소가 영국 국민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출할 때뿐이며 일단 선출이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며 선거 대의제를 비판했던 맥락과 같이한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의사를 대신 표출하는 대표들의 역할은 말 그대로 ‘대리자’, ‘전달자’의 역할로 국한되어야 한다.

선거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시각은 선거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 차선책이 아닌 그보다 이상적인 정치제도로 바라보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고 비판했던 맥락을 공유하고, 아테네식 직접민주주의가 감정적 선동에 취약했다고 주장한다. 아테네의 경험을 반성하고 감성, 선동 보다는 이성에 기반한 심의(審議)가 기반이 되는 정치 기제를 선호한다. 이는 공공선을 추구하는데 필수적인 심의 능력을 가진 대표들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선거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의 차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상적인 정치기제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대표자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판단 능력을 가지고 시민들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대표자인 것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대의제를 위해서 대표들의 심의 기제가 잘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시각차에 따라 해결책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차선으로 선거 대의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실패는 대표들이 국민들의 의지를 제대로 ‘대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대표의 실패’를 그 원인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대표의 실패’를 고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카르텔 형성을 막고, 사적 당파적 이익에 매몰될 수 있는 환경들을 제거하고, 국민들의 직접적 참여와 감시기능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발안제를 통해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관련되어 있어서 소위 ‘중이 제 손으로 머리를 깎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 국민들이 직접 관련 법안을 발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국민투표제를 통해 정부와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법률을 만들었을 때 이것의 실행 여부를 국민들이 직접 선택함으로써 그들의 대표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표들이 윤리적으로 정치적으로 국민들의 대표자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할 때 소환하여 대표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를 마련함으로써, 대표자들이 대리하는 데 있어서 유권자들의 뜻이 지속적으로 반영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선거 대의민주주의를 이상적인 정치제도를 보는 입장에서는 대의민주주의의 실패를 ‘대표의 실패’가 아닌 ‘심의의 실패’를 그 원인으로 본다. 우리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대의제를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대의제가 현재 인류 보편적인 정치제도로 성공하여 안착된 이유는 대의 기제에 내장된 심의성 때문이고, 현재 대의제의 위기는 현재의 정치가 선호 집합적 정치 행태, 즉 국민들의 집합적 선호에 따라 정치를 운영하는 행태로 점철되면서 이 심의 기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역을 대표하여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대립할 때, 더 큰 공동체인 국가를 위한 선택을 하기 보다는 다음 번 선거를 위해서 지역의 이익만을 대표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볼 때 예산 낭비가 확실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단기적 이익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각종 왜곡된 정보나 억지, 정치적 인맥을 끌어들여 사업 예산을 정부로부터 받아내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선거 대의제의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은 국민들의 직접적 참여의 확대와 대리기능의 회복이 아닌 국민의 집합적 선호를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대표의 자율성’을 확보해 심의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김주성, 2011: 33-78).

4. 선거 대의민주주의 심의의 한계

선거 대의민주주의를 이상적인 정치체로 보는 시각이 대의민주주의 실패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심의의 실패’를 생각해보면, 이는 자격 없는 사람들이 시민들의 대표가 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동시에 선거 대의제의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심의의 실패’ 근저에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우선 자격의 문제를 살펴보면, 자격은 능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능력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토론을 한다면 토론의 결과는 항상 합리적이고 공공의 이익에 최선인 집단적 판단이 나올까? 기본적으로 국회의원 등 각종 대표로 선출된 사람들은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국민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보다 자신보다 뛰어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대표가 되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사업이나 공직 등 그들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대표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심의의 실패 원인을 대표들의 자질에서 찾고자 할 때, 선거에서 시민의 선택을 결정하는 능력과 숙의, 토론의 능력은 서로 다른 능력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심의에 중요한 숙의, 토론의 능력은 선거를 통해 검증되는 능력이 아니다. 주장이 확실한 사람, 그 주장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사람일수록 선거의 과정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쉽다. 그리고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을 권위로 누르고 본인의 의견에 동조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기다리는 능력은 오히려 선거에서 득이 되지 않는다. 대표자들이 가진 권력이 클수록 숙의, 심의의 능력이 반비례하는 경우가 크다. 심의, 숙의의 기본적인 전제는 참여자들의 동등한 권리이다. 권력자가 심의 방향과 사실들의 무게를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토론을 이끌어 간다면 합리적인 심의가 이루어 질 수 없다. 심의는 기본적으로 정부 운영의 효율성에 반대되는 과정이다. 심의의 깊이와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부정책의 실질적 운영은 그만큼 늦어지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정부운영의 효율성 측면을 강조하면 할수록 심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심의 실패’의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은 한 개인의 사회 성공능력, 자격의 문제라고하기 보다는, 심의자들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 효율 중심적 사회문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심의자의 탁월성과 우월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심의의 실패와 관련하여, 대표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해당 정당의 선거후보로 선출이 되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정당 민주주의라고 할 만큼 정당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국민들이 후보자 개개인이 아닌 어느 정당에 속한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투표를 하면서 후보자에게 국민에 대한 충성 대신에 정당에 대한 충성이 일차적인 것이 된다. A당 소속 후보자이면 그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소위 ‘인물론’으로 선거의 결과가 달라지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인물론이 통하는 지역이 많은 것은 아니다. 심의가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감성적인 판단, 대중영합적인 판단을 배제한 채 공동체의 더 큰 이익을 위해 합리성, 이성적 판단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정당과 권력자만을 바라보는 정치인들이 이와 같은 심의를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심의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이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통해 그 의견들의 가부가 선택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당문화에서 심도 깊은 토론은커녕 다양한 의견들이 해당 행위, 반역 행위로 낙인찍히는 이런 구조에서 심의의 실패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의 실패’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선거이다. 선거 대의제의 장점이라고 생각되었던 심의기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의제의 핵심제도인 선거에 의해 심의성이 약화 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대부분 선출직 대표들의 관심은 어떻게 다음 선거에서도 선출될 수 있는가이다. 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의회민주주의는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이 의회에 모여 공동체의 운영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선거는 의회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원들은 선거가 목적이 되면서 의회 참여 보다는 지역구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쏟는다. 의원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성실한 의회 활동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의정활동과 관련해 상징적으로 언론에 몇 번 자신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으로 그들의 임무는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성실한 의회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세탁할 수 있는, 예를 들어 이름 없는 시민단체에서 부여하는 ‘우수 의원상’과 같은 것을 거래를 통해 사고 이를 지역구에 광고함으로써 이를 대신한다. 의원 임기 동안 지역구 조직을 구성하고, 유지하며, 인지도를 높이는데 의정활동이 맞추어 진다. 대표 정치인으로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정치 대립의 선봉에 서거나 당의 중요 요직을 맡지만 기본적으로 심의성과는 관련이 없다. 모든 의원이 그렇지는 않지만 놀랍게도 의원들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동체의 중요한 사안에 무지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과 관련 없는 사안에 대해 심각한 토론을 하려하지 않는다.

선거 대의민주주의가 만들어 낸 문제점은 피통치자와 통치자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 시민의 참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정치에 대한 소외로 시민들 자신들이 부여한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기적인 선거를 통한 대표 선출 권리를 주권행사라고 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선거가 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 엘리트는 상업언론과의 유착을 통해 일반 시민들은 참여할 수 없는 비용 높은 진입 문턱을 만들어 놨다. 선거를 통한 대표의 선출방식은 지지세력의 만족을 위한 소음과 같은 정쟁의 일상화라는 모습을 정치의 특성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점이 선거에 기반한 대의제의 구조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선거라는 수단이 가지고 있는 귀족적인 성격과, 공화정에 기반을 둔 대의제가 대의민주주의로의 변화에 근거를 제공했던 투표권의 확산 및 평등선거가 사실상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선거 대의민주주의가 현재 보편적 민주주의로 인식되고 있지만, 선거 대의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성격이 많이 탈색된 민주주의의 하나의 형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국, 직접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을 실현하는 제도들의 도입이 현재 선거 대의민주주의의 실패를 해결하는데 있어 보다 설득력 있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지방분권으로 인한 자율적인 정치단위의 소형화는 시·공간적 제약으로 현실화에 문제가 있었던 직접민주주의 도입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발전으로 시·공간의 제약이 더 이상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한 이유의 근거로 작동하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오히려 소위 Start-up 정당, 네트워크 정당, 디지털 정당으로 불리며,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이나, 스페인의 포데모스 등의 직접민주주의 사례는 시공간 제약의 극복뿐만 아니라 시민들 사이의 심의능력 발전과 확대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장석준, 2014; 장석준, 2015; 채진원, 2016). 직접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화석으로만 존재하는 정치제도가 아니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들의 도입은 단순한 선거 대의민주주의 보완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변환의 방안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존에 논의되어 왔던,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의 직접민주주의 제도들은 선거라는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와 양립할 수 있는 제도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는 현재 직접민주주의의 논의가 선거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선거 대의민주주의의 실패에 대한 고민은 선거 대의민주주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래 모습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당연히 선거 외에 또 다른 대표 선출 방법이었던 추첨에 대한 논의가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


VI. 결 론 : 지방정부 직접민주주의 활성화 조건과 추첨 대의제의 도입

선거 대의민주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는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으며, 이의 해결을 위해 직접민주주의적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지방분권과 ICT의 발전은 지방정부 차원의 직접민주주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직접민주주의의 적용 사례로 논의되고 있는 오성운동이나 포데모스는 정당단위의 직접민주주의의 적용사례로 지방정부의 직접민주주의 운용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오성운동이나 포데모스의 시민참여방식을 도입한 지역정당들이 활성화 된다면 지방정부의 직접민주주의와 더불어 지역정치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지방정부의 직접민주주의가 활성화 될 수 있는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방분권으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자치의 단위는 광역지자체가 아닌 기초지자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기초지자체가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의 간섭 없이 지자체 독자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과 권한이 부여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지역개발사업과 같은 경우는 국토종합계획, 자연보호, 보존 정책에 따라 지자체 자율성에 한계가 있겠지만, 주민의 복지, 교육, 안전, 치안과 같은 사안은 기초지자체의 자율에 맡겨져야 한다. 과감한 국세의 기초지자체세로의 전환을 통해 기초지자체의 재정 자립 추구해야한다.

둘째, 기초지자체가 확대된 자율권을 바탕으로 지역 현실에 맞는 다양한 정치제도들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여러 직접민주주의적 제도 도입의 시도를 중앙정부차원에서 지원해야한다. 정착기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지자체 차원의 가능 모델 연구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경우 추첨제의 도입이 적극적으로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추첨은 인민에 의한 통치와 복종을 구현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가 실천될 수 있는 제도이다. 추첨이 기초지자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드려진다면 정치의 다양성 측면에서 큰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아테네처럼 선거와 추첨,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의 제도를 다 사용할 수 도 있고 이 중 기초지자체의 특성에 맞게 조합할 수도 있다.

셋째, 정치참여를 위한 민주주의 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 지방자치제도는 주민들의 정치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제도이다. 특히 추점과 관련해 직접민주주의의 제도로서 추첨이 ‘경품 추첨’과 같이 ‘운’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장 잘 실천했던 대의제도라는 것을 교육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추첨 대의제에서는 선거와 달리 일반적인 시민의 책무를 충실히 한다면 부와 상관없이 언제든 공동체의 공무를 담당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시민의 대표로서 언제든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치 시스템에서 보다 구성원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넷째, 시민의 자질문제에 대한 오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시민의 심의기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의 대한 비판 중에 하나가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대중에 의한 정치라는 것이다. 선거 대의제가 직접민주주의보다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선거 대의제가 충동적인 감성을 제어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엘리트 대표들이 운영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의 실패’로 표현되는 선거 대의제의 실패는 충동적이고 개인적 이익에 기반을 둔 정치가 그들이 비판했던 대중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의 주요 행위자가 엘리트 대표이든 일반 시민이든 공공이익을 추구하는데 있어 충동과 감성, 개인이익을 억제해야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집단 심의이다. ‘심의 민주주의’로 표현되는 심의에 바탕 둔 집단의 결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시민들에게 심의에 몰두 할 수 있는 경제적 보상과 심의자들 사이의 평등한 관계 설정이 이루어져야하며, 심도 깊은 숙의,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전문가의 도움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들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공유되었다 생각할 때 어떤 방식으로 추첨 대의제를 지자체에 도입할 수 있을까?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예시로는 다음과 같다. 핵심은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선거제와 추첨제의 공동 활용, 시민 위원회 설치, 시민정치학교 설립이다.

추첨제는 광역지자체 단위보다는 우선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운영하기에 좀 더 적당한 제도로 생각된다. 추첨제는 선거제와 달리 대표의 우월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있어 우월적인 대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반 시민이 대표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첨을 통해 대표로 선택된 일반 시민들이 해당 공동체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표하는 공동체의 공간적 범위와 본인들의 삶의 공간이 일치되는 것이 좋다.

현실적으로 추첨이라는 제도는 낯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초의회 의원선출에 있어서 선거제와 같이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선거로 선출된 의원에게 4년의 임기가 주어지는 것을 고려할 때, 총 의원의 30%를 2년 임기로 추첨을 통해 선출하고 이후 추첨제를 통한 대표의 수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초단체장을 선출하는 경우에는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되, 행정부 내에 상설 기구로 시민 위원회를 만들어 위원들을 추첨을 통해 선출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첨을 통한 시민 위원들의 임기 또한 2년으로 한다. 추첨을 통한 대표들의 임기를 2년으로 하는 이유는 많은 시민들이 대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함이며, 대표로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민 위원회는 기초지자체의 규모 있는 사업들의 실시 여부를 심의하거나, 제안하는 역할 뿐 아니라 단체장과 같이 공동 지도부를 구성할 수도 한다. 또는 현안에 따라 추첨을 통해 한시적 시민숙의기구를 만들어 현안에 대한 집중숙의를 통해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공동체내에 추첨을 통해 선출된 대표들은 공동체의 대표들로 주민들이 위임한 권한을 사용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이나 의전이 현재 선거 대의제의 대표들이 향유하는 것과 같은 특권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특권은 추첨이 가지는 제도적 의의와 충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첨으로 선출될 수 있는 자격은 공동체 대표로서 책임감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세금납부 등의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범죄 기록이 없는 성인으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민정치학교를 설립해 이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시민들에게만 추첨의 자격을 부여할 수도 있다. 시민정치학교는 민주주의에 필요한 시민권리교육과 시민책임교육을 담당하며, 추첨을 통해 대표로 선출될 때, 주어지는 역할과 의무를 사전에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추첨은 추첨을 신청한 자격 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며, 추첨으로 선출된 대표가 범죄 등 공동체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했을 때 언제든지 주민소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시민의 대표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첨으로 선출될 수 있는 기회는 1회로 제한한다.

선거를 통한 대표의 선출과 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중앙의 정치와 달리 지방정치는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하는 당위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중앙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와 달리 지역주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직접민주주의적 제도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추첨은 직접민주주의의 여러 제도들 중에서 현재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제도이다. 이는 추첨에 대한 오해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충분히 현재에도 활용 가능한 제도이며, 민주주의의 이념에 가장 가까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방분권의 논의가 사회적 중요의제로 확대되면서 추첨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Notes

1) 헌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관련된 조항으로는 헌법 제8장 제117조, 제118조가 있다.
2) 현재 법적인 용어는 지방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이지만, 본 논문에서는 지방정부가 자치에 좀 더 적합한 용어라고 생각해 이를 사용한다.

References

  • 국정기획자문위원회(2017).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 김주성(2011). “심의민주주의인가, 참여민주주의인가” 서병훈 외. 『왜 대의민주주의 인가』, 서울: 이학사.
  • 민영수, 이지문(2013), “자본주의 대안체제로서의 공선사회 모색: 협동조합과 추첨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사회이론』, 44권 0호.
  • 서경석(2018). “선거형 대의제의 대안으로 추첨형 대의제,” 『민주법학』, 66권 0호.
  • 이기우(2016).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속한다 이제는 직접민주주의이다』, 미래.
  • 이지문(2012). “민주주의 가치 구현을 위한 추첨제 의회 모색,” 『대한정치학회보』, 19권 3호.
  • 장석준(2015). “포데모스, 더 깊이 들여다보기,” 『미래에서 온 편지』, 제20호.
  • 장석준(2014). “21세기형 정치조직의 등장인가,” 『미래에서 온 편지』, 제16호.
  • 정주환(2016). “그리스 민주정치와 선거제도-아테네 민주주의의 형성과 추첨제를 중심으로,” 『법학논총』 40권 1호
  • 주성수(2009). 『직접민주주의 풀뿔리로부터의 민주화』, 아르케.
  • 채진원(2016). “시민정치의 흐름과 네트워크정당모델의 과제,” 『민주주의와 인권』 제16권 1호.
  • 최용환(2016). 『경기도 연합정치의 평가와 과제』, 경기연구원
  • 최장집 외(2013).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 Alexis de Tocqueville (1840). De la democractie en Amerique. 임효선·박지동역. 『미국의 민주주의』, 한길사
  • Aristoleles, (BC. ?) Politika, 천병희 역 『정치학』, 숲
  • Bernard Manin (1997). The Principles of Representative Government, 곽중혁 역. 『선거는 민주적인가』, 후마니타스. [https://doi.org/10.1017/CBO9780511659935]
  • David Easton(1953). The political system: An Inquiry into the State of Political Science, Alfred Knopf.
  • David Van Reybrouck(2013). Against Elections: The Case for Democracy, 양영란 역.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 갈라파고스.
  • Fabio Bordignon, Luigi Ceccarini(2013). “Five Stars and a Crkcket. Beppe Grillo Shakes Italian Politics”, Sout European Society and Politics. Vol. 18, No. 4. [https://doi.org/10.1080/13608746.2013.775720]
  • Francis Dupuis-Deri(2013) Democratie, historie politique dun mot aux Etats-Unis et en France, 양영란 역.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 p.115 재인용
  • James Madison(1787a). “Federalist Paper #10” http://www.let.rug.nl/usa/documents/1786-1800/the-federalist-papers/the-federalist-10.php, (최근 검색일. 2018. 2. 27)
  • James Madison(1787b). “Federalist Paper #58” http://www.let.rug.nl/usa/documents/1786-1800/the-federalist-papers/the-federalist-58.php, (최근 검색일. 2018. 2. 27)
  • J. J.Rousseau(1762).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 이태일역. 『사회계약론』, 범우사
  • John Adams(1851). 『The Works of John Adams vol 6』. http://oll.libertyfund.org/titles/adams-the-works-of-john-adams-vol-6
  • Maria, J and Przeworski, A. eds.(2008).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안규남·송호창역.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후마니타스.
  • Montesquieu(1748), L’espritdesLois, 하재용 역. 『법의 정신』, 동서문화사
  • Robert A. Dahl (2001), HowDemocraticeistheAmericanConstitution?, 박상훈·박수형 역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 Sheldon S. Wolin. (2008). DemocracyIncorporated, 우석영 역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후마니타스.
  • Swift, A.(2006), PoliticalPhilosophy. Polity Press.
  • V.O.Key(1964), Politics,Parties,PressureGroups. New York: Crowell.
임정관 iwfreer@gg.go.kr

서강대학교 정치학 학사, 석사(비교정치), 미국 Albany Law School에서 J.D.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었으며 현재 경기도청 통일기반조성담당관실에서 통일분야 전문관으로 재직중이다. 관심분야는 남북교류협력, 국제법(대북제재), 민주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