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지개발에 의해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에 관한 단기종단연구* : 성차를 중심으로
초록
본 연구에서는 택지개발에 의하여 비자발적 은퇴를 경험한 고령 농업인을 대상으로 시간 경과에 따른 외상 후 성장의 수준 및 그 변화를 파악하였고, Tedeschi & Calhoun 모델을 적용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하여 택지개발 수요가 가장 많은 경기도 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생활하였으나, 택지개발에 의해 주거와 농지가 수용되어 비자발적으로 은퇴한 60세 이상의 178명 농업인을 조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외상 후 성장의 속성을 반영하여 성별에 따라 비교분석함으로써 성장의 의미와 현상을 엄밀하게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본 연구는 종단적 연구방법으로써 진행되는 1차 연구에 이어 질적 연구방법으로써 2차 연구를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통합적 연구방법(mixed methods research)을 적용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시간 경과와 성별의 상호작용 효과는 유의미하였다. 둘째, 여성 농업인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더라도 외상 후 성장이 계속 향상되었으나, 남성 농업인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외상 후 성장이 계속 하락하였다. 여성 농업인은 Time 1∼Time 4에 이르는 동안 남성 농업인보다 모든 시점에서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모든 집단에서 그 기간 내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이 보통수준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고령 농업인은 성별에 따라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그 영향력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농업인이 인식하는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만이 남녀 농업인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외의 영향 요인들은 집단별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여 외상 후 성장에 대한 맥락적인 정보를 탐색하였고, 그에 따라 염려 및 공감(자기노출), 사회 안전망 및 공동체 훼손(공식적 영역의 지지), 가장의 책임감 및 자녀의 성공(주거 형태와 경제적 상태) 등의 3개 주제를 도출하였다. 이와 같이 본 연구는 택지개발에 의하여 비자발적으로 영농활동을 중단하게 된 고령 농업인이 시간 경과에 따라 새로운 노년기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점을 실증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집단별로 차별화된 접근을 통하여 영농활동 중단에 따른 외상을 극복하고, 변화된 노년기 삶을 긍정적으로 향유하는데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했다는데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있다.
Abstract
This study identified the levels of post-traumatic growth and their changes over time, focusing on the elderly farmers who experienced involuntary migration and retirement due to land development. Additionally, the study applied the Tedeschi & Calhoun model to analyze the factors influencing post-traumatic growth in retired elderly farmers. For this purpose, the study surveyed individuals aged 60 and older who were involuntarily retired due to the expropriation of their residences and farmlands as a result of land development. A comparative analysis was conducted based on the gender of the subjects, and a mixed methods research was applied, sequentially conducting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research. The main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post-traumatic growth in female farmers consistently improved over time. However, posttraumatic growth in male farmers showed decline over time. Second, female farmers exhibited higher levels of post-traumatic growth at all points compared to male farmers. Nonetheless, the levels of post-traumatic growth in all groups were found to be below average. Third, the factors influencing post-traumatic growth and their impact differed by gender among farmers. Fourth, in-depth interviews were conducted with the subjects to explore contextual information on posttraumatic growth, which led to the derivation of three themes.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empirically identified gender differences in the process by which elderly farmers, who were forced to cease farming activities due to involuntary migration caused by land development, adapt to a new life. By doing so, it provides foundational data necessary for overcoming trauma caused by the cessation of farming activities and positively enjoying the changed life in old age.
Keywords:
land development, farming Activity, elderly farmers, post-traumatic growth, gender difference키워드:
택지개발, 영농 활동, 고령 농업인, 외상 후 성장, 성차Ⅰ. 서 론
한국에서의 택지개발 사업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주택난 해소를 위하여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하게 된다. 이러한 신도시 건설에서는 대도시 외곽 지역의 개발제한구역 내 농지를 수용하여 택지를 확보한다. 실제로 2018∼2020년 경기도 지역에서 신도시와 산업단지 등을 조성하기 위하여 소실된 농지는 김포, 평택, 화성 등에서 9,576만㎡로 조사되어 여의도 면적의 약 33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국토교통부, 2022). 이에 따라 택지개발 지역에 거주했던 농업인은 비자발적인 주거 이전과 동시에 생계 수단이면서 자신의 삶의 한 양식인 영농활동까지 중단할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윤순덕 외, 2008). 더욱이 대규모 택지개발 지역에는 고령 농업인들이 수십 년 동안 그 지역에 거주하면서 영농활동을 지속한 경우가 많으며, 택지개발 지역의 고령 농업인들은 다른 농업인과 마찬가지로 그 지역에서 영농을 지속하려는 욕구가 강하다(전병주, 2021; 전병주·최은영, 2017). 이에 따라 주택난 해소와 주거 안정화를 도모하려는 정부 차원의 개발 전략이 또 다른 집단의 주거 이전과 함께 자신의 생업을 잃는 등의 불안정한 삶을 초래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택지개발 과정에서 개발지역의 주민들은 주택 및 토지 수용 등에 따른 미흡한 보상과 이주 혜택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며 정부 등의 개발사업 주체와 갈등을 경험한다(길준규 2022). 이에 택지개발 사업에 의하여 이주한 고령 농업인들은 개발이라는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노년기 삶의 불확정성(indeterminacy)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서준교, 2023). 더욱이, 택지개발에 의해 고령 농업인이 영농활동을 지속하지 못할 경우에는 비가역적(irreversible) 은퇴 상황으로 고착되어 노년기 삶에서 총체적 위기를 유발하며 새로운 노년기 삶의 수용을 거부하거나 삶의 적응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형성할 수 있다(남순현, 2017). 실제로 택지개발에 의해 이주한 고령 농업인은 개발에 따른 주거 변화와 영농활동 중단 등으로 외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화된 삶을 수용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전병주, 2021).
이렇게 택지개발 지역에 거주했던 고령 농업인이 영농활동까지 중단한 경우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이해 불가능한 현실에 직면하며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도식 구조(schematic structure)가 크게 훼손되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전병주, 2021). 이러한 고령 농업인이 이주한 지역에서의 변화된 주거환경이나 지역사회 등에 적절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영농활동 중단으로 자신의 변화된 정체성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택지개발 사업에 의한 외상이 만성화되거나 복합적 외상(complex trauma)으로 이어져 외상 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여도 자신을 위한 일상으로의 삶을 회복하는데 한계로 작용하게 된다(Noone at al., 2009).
그러나 특정 사건에 의하여 외상을 경험한 개인이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회복하거나 그 충격을 극복함으로써 외상 경험 이전보다 긍정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보고되었다(Calhoun & Tedeschi, 1999). 더욱이 최근에는 개인에게 상처와 고통을 초래하는 외상을 좀 더 폭넓게 인식하면서 외상을 야기한 사건 자체의 문제보다 그 외상에 대해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서 외상에 적절히 대처하고 적응함으로써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은심·이민규, 2018). 이에 따라 택지개발에 의하여 비자발적으로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은 외상 사건 이전의 도식을 재건하여 노년기 삶에 대해 점차 긍정적으로 지각함으로써 은퇴 등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고 변화된 삶에 대한 적응을 증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택지개발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은퇴한 고령 농업인이 고통스러운 외상 경험 속에서 성장의 긍정적 의미를 발견하고, 변화된 삶에서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은퇴 등에 따른 노년기 삶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에 주목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보고된 외상 후 성장에 대한 모델 중 Tedeschi & Calhoun(2004) 모델은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것으로 평가된다(전병주, 2023; 주인석 외, 2020). 이 모델에서는 개인의 외상 후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핵심적 요인으로 반추(rumination), 자기노출(self-disclosure) 및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가 제시되었다. 즉, 인간은 외상에 따른 스트레스와 혼란 등을 경험하며 일상적인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지만, 인간이 경험한 부정적 상황에 대해 그 상황을 이해하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노력과 더불어 자신 또는 타인과의 대화 및 글쓰기를 시도하거나, 주변과의 지지체계를 한층 강화함으로써 현재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재구축하며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전병주·김현수, 2019).
이렇게 택지개발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영농활동이 중단되면서 고령 농업인이 경험한 외상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여 자신의 삶을 새롭게 재건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시도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택지개발에 따른 고령 농업인의 삶은 고정불변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신에 의하여 실현되는 과정 중에 있으므로 시간 경과에 따라 삶의 구체적인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택지개발에 따른 이주자에 대해 간헐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전병주·최은영, 2017; 전병주, 2023), 택지개발에 따른 이주자의 삶을 시간 경과에 따라 분석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본 연구에서와 같이 택지개발에 의해 자신의 주거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생계 수단을 모두 상실한 고령 농업인의 삶에 대한 종단적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한편,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에 대한 외상 후 성장을 분석함에 있어 선행연구에서 보고된 외상 후 성장의 속성을 반영함으로써 외상 후 성장의 의미와 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택지개발에 의해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의 성별에 따른 외상 후 성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이론을 처음 제시한 Tedeschi & Calhoun(1996) 연구에서는 성별에 따라 외상 후 성장에 차이가 존재함을 제시하였다. 그 외 다수의 국내외 연구에서 성별에 따른 외상 후 성장의 유의미한 차이를 보고한 바 있다(윤판기·황혜정, 2024; 전병주, 2023; Gerber & Schuettler, 2011).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개인이 경험한 외상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직면한 위기 상황에 따라 그에 대한 양상과 대처가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면서도 성별에 의한 차이점을 충분하게 규명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Nemeroff et al., 2006). 결국,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이 중단된 고령 농업인이 외상을 벗어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외상 후 성장을 규명하기 위하여 더욱 천착(穿鑿)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는 택지개발에 의하여 비자발적 은퇴를 경험한 고령 농업인을 대상으로 시간 경과에 따른 외상 후 성장의 수준 및 그 변화를 파악하였고, Tedeschi & Calhoun 모델을 적용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택지개발에 의하여 비자발적으로 영농활동을 중단하게 된 고령 농업인이 새로운 노년기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점을 실증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집단별로 차별화된 접근을 통하여 영농활동 중단 등에 따른 외상을 극복하고, 변화된 노년기 삶을 긍정적으로 향유하는데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Ⅱ. 이론적 배경
1. 택지개발과 고령 농업인의 은퇴
주거 이전은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그 상황에 직면한 개인의 사회적·문화적 환경 및 역사적 스펙트럼(spectrum)에 따라 주거 이전에 대한 수용성과 그 가치가 달라지게 된다(전병주, 2021). 특히,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주거를 이전하는 경우와 달리 공익을 추구한다는 명분에 의하여 정부 등 사업 주체의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택지개발 사업의 경우에는 지역 주민에게 삶의 터전을 잃고 또 다른 주거를 물색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러한 개발지역은 노인이 많이 거주한다는 특징이 있어서 영농에 종사하는 고령 농업인은 택지개발에 의하여 자신의 의사가 배제된 상태에서 평생 살아온 터전과 생업을 모두 잃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한국 농업인의 73%는 20년 이상 농사경력을 갖고 있어 평균 농사경력은 33년에 이른다(통계청, 2020). 또한, 농업인에게 향후 거주지역, 영농계획을 조사한 결과(n=1,259), ‘농촌에 계속 살고 싶다’라는 응답이 85%, ‘영농활동 계속 하겠다’라는 응답이 74%로 나타났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9). 이렇게 고령 농업인에게 영농은 생계수단이면서 삶의 한 양식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가업(家業)이라는 인식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고향이나 다를 바 없는 그 지역에서 영농을 지속하려는 욕구가 강하여 이주와 은퇴 의사가 낮은 것으로 나타나 고령 농업인에게 개발사업은 다른 사회학적 특성을 지닌 어느 집단보다 더 큰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사회적 취약계층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개발 전략이 고령 농업인의 주거 이전과 함께 생업을 잃게 하는 등의 불안정한 삶을 초래하는 것이다. 지역주민은 공익을 추구한다는 명분 아래 추진되는 개발로 인하여 평온한 주거권을 잃으며 재산권을 제약받는다고 생각한다(김정열·김종진, 2014). 택지개발 과정에서 가족처럼 지내온 이웃과 개발문제로 갈등을 경험하며 익숙한 환경을 떠나는 불안 속에서 정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고, 실제 이주한 후에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지역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기도 한다(이용규 외, 2013).
더욱이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어 인근 지역에서 대체농지 취득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고령 농업인은 개발에 따라 은퇴하게 되어 소득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할과 여가 시간 등에서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비자발적 은퇴는 일상생활의 건강, 경제 및 관계적 측면 등에서 총체적 위기를 유발한다(남순현, 2017). 이에 더하여 고령 농업인은 노후준비 부족과 개발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어 현실을 수용하고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공시지가를 기초로 한 토지, 건축물 등에 대한 보상금이 지급되며, 이주대책으로 이사 비용과 이주 정착금 등의 금전적 보상을 제도적으로 운영할 뿐이다. 택지개발 지역에서 수십 년을 거주한 고령 농업인이 개발과정에서 경험한 갈등과 외상을 치유하며 취약해진 건강을 회복하거나, 새로운 지역사회에서 적응을 위한 지원은 제공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비자발적인 은퇴를 경험한 고령 농업인은 직업역할 상실에 따른 정체성을 잃으며 새로운 지역공동체 삶에서 스스로 또는 사회적으로 이방인으로 전락하여 노년기의 변화된 삶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에서 농업계의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등과 함께 양성평등 기류가 점차 확산되어 이미 농업노동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여성 농업인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어(김문희·김태종, 2020) 여성 농업인이 자신의 역할상실에 따른 삶의 변화가 남성 농업인과 비교하여 어떠한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한국의 농업계와 농촌사회에서 영농활동과 지역활동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여성 농업인이 증가하였으며, 개인의 삶에서 영농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그 성과 등에서도 성별과 관련한 양상이 이전과 크게 다르므로 농업인의 삶을 고찰할 때에는 젠더관계(gender relation)를 고려한 분석의 필요성을 제언하였다(임소영 외, 2021). 아울러 한국에서의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누적된 성별에 따른 경험의 차이는 노년기 삶을 분석하는데 통제요인을 넘어 집단간 비교분석의 관점에서 심층적 분석에 의한 이론적·실천적 함의를 모색하는데 주요 작동요인으로 보고되었으므로(양승민·최재성, 2021)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성별에 따른 차이와 그 삶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 등을 경험한 고령 농업인이 개발에 따른 외상에서 벗어나 노년기의 변화된 삶을 수용하고 원활한 적응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본 연구에서는 외상 경험 속에서 성장의 긍정적 의미를 발견하고, 변화된 삶에서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외상 후 성장을 검토하였다. 여기서의 외상은 전쟁, 재난 등의 강력한 사건뿐만 아니라 삶에 큰 변화를 유발하는 위기사건을 포함하므로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서 의미하는 외상보다 포괄적인 개념이 된다(윤명숙·박은아, 2011). 그리고 성장은 단순히 외상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자신의 심리적 기능 수준을 넘어 보다 긍정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의미한다(이양자·정남운, 2008). 물론 외상에 따른 고통이 감소할지라도 반드시 성장을 증진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외상 후 성장의 지각은 장기적으로 고통을 완화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여 적응을 도모한다(Elderton et al., 2017). 실제로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개인적 강점이나 대인관계 강화 등을 통해서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한 연구에서는 외상 후 6개월 시점에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나, 1년 이상을 지난 시점에서 점차 새로운 신념을 구축하고 긍정적으로 변화된 현실을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Tallman et al., 2010).
이러한 외상 후 성장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일어나는가에 대해 다양한 모델이 제시되었다. 그 중에서 Tedeschi & Calhoun(2004) 모델은 긍정적 변화에 대해 가장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유희정, 20014; 전병주, 2023; 주인석 외, 2020). Tedeschi & Calhoun(2004) 모델에서는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 개인이 경험한 외상 사건에 대한 인지적 과정으로서의 반추, 개인적 성격적 특성으로 자기노출 및 환경적 요인으로 사회적 지지를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외상 사건은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하며 개인의 행동 통제를 어렵게 하지만, 외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떠올리는 과정 속에서 처음에는 자동적이고 침습적(intrusive) 반추가 발생할 수 있으나, 이것은 의도적(deliberate) 반추에 선행하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박주희 외, 2024). 개인이 기존 도식과 신념을 재건하고 복합적인 인지과정 속에서 사회문화적 요소와 상호작용을 시도함으로써 그 사건에 따른 병리적 증상은 점차 완화하고 적응과 성장을 지향하는 의도적 반추에 도달하게 된다(Ehlers & Clark, 2000). 그리고 외상에 대해 자신 또는 타인과의 대화와 표현적 글쓰기를 진행하여 상대방과 그것을 공유하면서 부정적인 감정과 고통에 대한 노출을 시도하거나, 자신의 고통스러운 시간에 가족과 지역사회 등에서의 충분한 지지체계가 작동되었을 때 한층 더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김현미·정민선, 2015).
이에 따라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하게 된 고령 농업인에게 Tedeschi & Calhoun(2004) 모델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고령 농업인은 자신이 경험한 위기 사건에 대하여 통합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도식을 구축함으로써 외상을 경험하기 이전보다 긍정적 변화를 추구하며 한 단계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외상을 경험한 고령 농업인이 높은 수준의 의도적 반추가 이루어져 새로운 신념과 가치를 형성함으로써 외상 이전보다 자신의 삶에서의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한층 더 높은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이동훈 외, 2017). 이 과정에서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들이 새로이 이주한 지역(동네) 또는 기존 이웃과의 교류를 지속하여 자신의 고통과 경험을 논리적으로 구조화하고 진정으로 표출함으로써 자기개방에 의한 고통을 완화하는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Sloan & Marx, 2004). 이렇게 고령 농업인의 자기노출은 사회적 요인에 의한 영농활동 중단이라는 외상 사건 이후에 타인에게 그것을 알리거나 공유하는 방식을 통하여 개인의 부정적인 감정의 해소와 더불어 정서적 위안을 이끌며 보다 성숙한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Tedeschi & Calhoun, 2004).
그리고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이 가족, 친구, 이웃 주민 등의 비공식적 영역뿐만 아니라 개발사업 주체와 지역사회 등의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는 개발과 은퇴에서 형성된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하고 점차 긍정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활성화하여 위기 상황에 노출된 개인에게 외상 후 성장을 촉진하게 된다(전병주, 2023). 이렇게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고통을 노출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지지체계로부터 지지와 공감을 획득하고 그 지지에 대해 만족함으로써 외상 후 성장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수월해진다(Tedeschi & Calhoun, 1996). 이에 택지개발에 의하여 외상을 경험한 고령 농업인에게 다양한 지지 자원이 있다는 믿음과 그 지지에 대한 만족감은 외상 이후에 취약해진 주변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고취하고 긍정적이고 새로운 신념을 구축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귀인을 강화시키고 변화된 삶에 적응하는데 기여하게 된다(전유진·배정규, 2013).
Ⅲ. 연구방법
1. 통합적 연구방법
본 연구에서는 종단적 연구방법으로써 진행되는 1차 연구에 이어 질적 연구방법으로써 2차 연구를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통합적 연구방법(mixed methods research)을 적용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통합적 연구방법에서 적용되는 모형 중에서 Creswell & Plano Clark이 제시한 설명 설계(explanatory design)에 따라 1단계에서 양적 자료를 수집하고 2단계에서 1단계 수집 자료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질적 자료를 활용하는 방식을 적용하였다(Creswell & Plano Clark, 2006). 이에 본 연구에서는 종단연구로 진행된 연구결과에서 설명하기 어려웠던 점에 대하여 심층인터뷰를 추가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개발에 의해 은퇴한 고령 농업인들의 외상 후 성장의 변화에 대해 좀 더 엄격하고 정밀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통합적 연구방법론은 기존에 제시된 양적 및 질적 접근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양자의 이점을 활용하는 실용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론으로(Greene et al., 1989) 본 연구에서 고려되었다.
2. 1차 연구(양적연구)
조사대상자는 개발 수요가 많은 경기도 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생활하였으나, 택지개발에 의해 주거와 농지가 수용되어 비자발적으로 이주한 60세 이상의 농업인으로 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택지개발에 의해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에 대하여 성별을 기준으로 집단을 나누어 표집하였다. 본 연구에서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개발지역 이주자의 자조모임과 개발조합 회의 등에 참석하여 조사대상자의 일부를 확보하였고, 그 후 다른 조사대상자를 순차적으로 소개받는 형식으로 설문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를 위하여 연구자는 소속 대학교의 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을 받고 연구를 진행하였다(IRB관리번호: 2020-HR-166 등). 본 연구에서는 전체 연구기간과 관련 선행연구의 분석결과 등을 고려하여 약 6개월 간격으로 시점을 나누어 Time 1∼Time 4로 구성하였다. 본 연구에서의 Time 1은 2020년 10월∼12월에 실시하였고, Time 2는 2021년 7월∼8월, Time 3은 2022년 2월∼3월 그리고 Time 4는 2022년 10월∼12월에 실시하였다. 본 연구에서 Time 1에 참여한 372명이 Time 4에 이르는 동안 중도에 탈락했거나, 수집된 설문지 중에서 불성실하게 응답한 설문지를 제외하고 본 연구에 적합한 178명의 자료를 최종적으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에서 외상 후 성장을 측정하기 위해서 송승훈 외(2009)의 연구에서 개발한 척도(K-PTGI)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측정한 점수가 높을수록 조사대상자가 외상 후 긍정적 변화를 많이 경험했다는 것을 말한다. 송승훈 외(2009)에서 Cronbach’s α 값은 .91 이었으며, 본 연구에서는 .83 이었다. 그리고 의도적 반추를 측정하기 위해서 안현의 외(2013)의 연구에서 사용한 척도(K-ERRI)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측정한 점수가 높을수록 조사대상자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안현의 외(2013) 연구에서 Cronbach’s α값은 .95 이었으며, 본 연구에서는 .81 이었다.
조사대상자의 자기노출을 측정하기 위해서 박준호(2007) 연구에서 개발한 척도를 수정하여 사용하였다. 여기서 측정한 점수가 높을수록 조사대상자가 타인에게 해당 사건에 대한 자기노출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박준호(2007) 연구에서 Cronbach’s α 값은 .97 이었으며, 본 연구에서는 .78 이었다. 그리고 사회적 지지를 측정하기 위해 전병주 외(2019) 연구에서 사용한 척도를 수정하여 사용하였다. 척도는 공식적 지지와 비공식적 지지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측정한 각 영역에서의 점수가 높을수록 해당 영역의 지지를 높게 인식한다는 것을 말한다. 전병주 외(2019) 연구에서 공식적 지지와 비공식적 지지 영역에서의 Cronbach’s α 값은 각각 .81, .76 이었고, 본 연구에서는 .78과 .80 이었다.
이와 같이 본 연구에 사용된 각 변수의 측정도구 및 동일한 도구를 사용한 선행연구를 정리하면 다음 <표 1>과 같다.
본 연구에서는 설문조사를 이용하여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서 IBM SPSS Statistics ver. 27.0을 사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에 대하여 성별을 기준으로 집단을 나누어 비교분석하였다. 먼저, 조사대상자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빈도분석을 실시하였고,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의 성별에 따라 외상 후 성장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하여 독립표본 t 검정과 반복측정분산분석(repeated measures ANOVA)을 실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의 성별에 따라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서 Tedeschi & Calhoun(2004) 모델을 적용하여 집단별로 위계적 회귀분석(hierarchical regression analysis)을 실시하였다.
3. 2차 연구(질적연구)
2차 연구는 종단연구로 진행된 1차 연구결과에서 심층인터뷰에 필요한 질문을 도출하는 정보의 순차적 활용을 염두에 두었다. 이에 연구자는 소속 대학교의 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을 받고 연구를 진행하였다(IRB관리번호: 2023-HR-176). 심층인터뷰는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 중 성별에 따라 집단별로 각각 4명을 구성하여 2023년 10월∼11월에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 진행된 2차 연구는 각 회당 평균 약 60분이 소요되었고, 본 연구에서 새로운 의미있는 진술이 발견되지 않는 이론적 포화(theoretical saturation)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1∼2회 심층인터뷰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2차 연구에서는 심층인터뷰 참여자가 경험한 현상에 대해 발생적·구성적 근원을 탐구하기 위해 참여자가 경험한 의식작용을 발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전병주·김현수, 2019). 이러한 현상학적 연구는 연구 참여자가 경험한 주요 현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 귀납적인 연구방법을 적용하게 된다(김영애·최윤경, 2017). 본 연구에서는 인터뷰 참여자가 경험한 현상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Giorgi(2004) 분석방법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분석방법은 연구 참여자의 진술에 대한 심층분석을 시도하여 경험적 의미를 발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참여자의 상황적 진술을 통해 당시 개인이 직면한 상황이나 경험을 이해할 수 있고, 개인의 특수성에서 전체 참여자들의 공통된 맥락을 찾음으로써 사건에서 취득한 경험의 본질을 규명할 수 있다(전병주·김현수, 2019). 이에 본 연구는 원자료 전사, 코딩과 분석, 범주화 작업 등의 분석과정을 거치며 의미를 추출하고 중요한 주제를 찾고자 하였다.
4. 윤리적 고려
본 연구자는 소속 대학교와 정부기관에서 실시하는 연구윤리 및 생명윤리 교육을 정기적으로 이수하였다. 연구자는 당해 연도 연구를 시작하기 전 소속 대학교의 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을 받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본 연구에 필요한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조사대상자에게 연구 목적 및 절차 등을 충분히 설명하였고, 조사 과정 중 언제라도 참여를 중지하고 탈퇴할 수 있음을 고지하였다. 본 연구에서 취득한 개인정보와 사생활 관련 자료는 통계법 제33조에 의거하여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그리고 연구자는 심층인터뷰 진행과정에서 법적 문제 또는 윤리적 이슈가 발생하지 않도록 위험요인을 사전 통제하고 연구를 수행하였다.
Ⅳ. 연구결과
1. 양적연구 결과
본 연구를 위한 조사대상자 178명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은 다음 <표 2>와 같다.
먼저, 조사대상자의 성별은 남성 103명(57.9%)과 여성 75명(42.1%) 이었다. 연령은 ‘70세∼74세’가 63명(35.4%)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65세∼69세’ 55명(30.9%) 이었다. 조사대상자가 인식하는 경제적 상태는 ‘보통이다’라는 응답이 62명(34.8%)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대체로 좋지 않다’라는 응답이 48명(27.0%) 이었다. 그리고 택지개발을 하기 전 그 개발지역에서 거주한 기간은 ‘20년 이상’이 134명(75.3%), ‘10년 이상∼20년 미만’이 34명(19.1%) 이었다. 현재 조사대상자가 거주하는 주거의 형태는 ‘자가’라는 응답이 95명(53.4%), ‘전·월세 등’이라는 응답이 83명(46.6%) 이었다.
본 연구에서 택지개발에 의해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 수준에 대하여 Time 1에서 성별에 따른 2개 집단의 동질성을 검정한 결과, 다음 <표 3>과 같다.
연구 초기에 고령 농업인을 대상으로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을 조사한 결과, 고령 농업인의 남녀 집단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Time 1에서 측정한 외상 후 성장 수준은 영농활동을 중단한 남성 농업인 집단(M=2.70)이 영농활동을 중단한 여성 농업인 집단(M=2.73)보다 다소 낮았으나, 2개 집단에서 통계학적으로 집단별 유의미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본 연구에서 Time 1에서 Time 4에 이르는 동안 택지개발에 의해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에 대하여 각 시점별로 그 수준 및 집단별 차이를 살펴본 결과는 다음 <표 4>와 같다.
본 연구의 Time 1과 Time 2에서 영농활동을 중단한 남녀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성별에 따른 집단별 차이는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Time 1과 Time 2에서는 여성 농업인 집단이 남성 농업인 집단보다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더라도 외상 후 성장이 다소 높았다. 반면에, Time 3에서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은 여성 농업인(M=2.81)이 남성 농업인(M=2.56)보다 유의미하게 높았으며(t=-2.271, p<.05), Time 4에서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은 여성 농업인(M=2.84)이 남성 농업인(M=2.55)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t=-2.615, p<.01). 즉, Time 3과 Time 4에서의 외상 후 성장 수준은 영농활동을 중단한 여성 농업인 집단이 남성 농업인 집단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시간 경과와 성별의 상호작용을 파악하기 위하여 반복측정분산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는 다음 <표 5>, <표 6>과 같다.
본 연구에서 외상 후 성장에 대해 시간 경과와 성별의 상호작용 효과는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F=3.018, p<.05). 반면에 성별에 의한 집단 간 차이뿐만 아니라 시간 경과에 따른 외상 후 성장에 대하여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반복측정분산분석 결과와 개별분석(변화량에 대한 t-검정)은 유의성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결국, 본 연구에서 시간 경과에 따라 외상 후 성장에서의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으나, 시간 경과에 따른 외상 후 성장은 성별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른 것으로 분석되었다. 다만, 본 연구에서 시간 경과에 따라 남녀 농업인 집단은 외상 후 성장의 증감에 대해 상반된 추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에 따라 시간이 경과할수록 남녀 농업인 집단에서 외상 후 성장의 차이는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 적용한 Tedeschi & Calhoun(2004) 모델에서 외상 후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 의도적 반추, 자기노출 및 사회적 지지에 대하여 Time 4에서의 집단별 수준 및 차이를 살펴본 결과는 다음 <표 7>과 같다.
본 연구에서 측정한 외상 후 성장 관련 요인에서 조사대상자의 의도적 반추와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는 성별에 따라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다만, 영농활동을 중단한 여성 농업인이 남성 농업인보다 의도적 반추와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를 다소 높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자기노출 영역에서는 여성 농업인(M=2.94)이 남성 농업인(M=2.69)보다 유의미하게 높았으며(t=-2.050, p<.05),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는 여성 농업인(M=2.96)이 남성 농업인(M=2.71)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t=-2.034, p<.05).
즉, 본 연구에서 측정한 외상 후 성장 관련 요인의 수준은 자기노출과 비공식적 영역의 지지에서 영농활동을 중단한 여성 농업인 집단이 남성 농업인 집단보다 더 높게 인식함으로써 성별에 따라 집단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영농활동을 중단한 남녀 농업인은 각 집단별로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를 가장 낮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 <표 8>, <표 9>와 같다.
이를 위하여 모델Ⅰ에서는 조사대상자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을 투입하였고, 모델Ⅱ에서는 Tedeschi & Calhoun(2004) 모형에서 보고된 의도적 반추, 자기노출, 사회적 지지를 추가적으로 투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각 요인들 간의 다중공선성 발생 여부를 살펴보기 위하여 VIF값을 살펴본 결과, 본 연구에서는 VIF 값이 모두 2.0 이하로 나타나 각 요인들 간에 다중공선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먼저, 영농활동을 중단한 남성 농업인을 살펴보면, 모델Ⅰ에서는 조사대상자의 경제적 상태(β=.260, p<.01), 주거 형태(β=.342, p<.001)가 외상 후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이 모델에서의 설명력은 20.8%로 분석되었다. 다음으로 모델Ⅱ에서는 조사대상자의 주거 형태(β=.223, p<.01)와 함께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β=.325, p<.001),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β=.211, p<.05)가 외상 후 성장에 추가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 모델에서의 설명력은 모델Ⅰ에서 17.0% 유의미하게 증가한 35.9%로 나타났다(F=8.142, p<.001).
다음으로, 본 연구에서 영농활동을 중단한 여성 농업인을 살펴보면, 모델Ⅰ에서는 조사대상자의 경제적 상태(β=.327, p<.01)가 외상 후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 모델에서의 설명력은 18.6%로 분석되었다. 다음으로 모델Ⅱ에서는 조사대상자의 경제적 상태(β=.263, p<.01)와 함께 자기노출(β=.268, p<.01),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β=.337, p<.001)가 외상 후 성장에 추가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 모델에서의 설명력은 모델Ⅰ에서 22.6% 유의미하게 증가한 39.1%로 나타났다(F=6.932, p<.001).
이와 같이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남성 농업인 집단에서는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 주거 형태,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 순으로 외상 후 성장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여성 농업인 집단에서는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 자기노출, 경제적 상태 순으로 외상 후 성장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본 연구에서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은 성별에 따라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그 영향력이 다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의 연구결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은 성별에 따라 외상 후 성장의 수준 및 변화 정도가 다르고,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그 영향력이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더욱이 본 연구에서는 Tedeschi & Calhoun(2004) 모형과 주요 선행연구에서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 일부 요인이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유의미한 영향력이 없었다.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에서는 자기노출과 외상 후 성장의 관계에서 남녀 농업인 집단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남성 농업인은 여성 농업인과 달리 자기노출이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본 연구에서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는 남녀 농업인 집단에서 각 집단별로 그 수준이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남성 농업인은 공식적 영역의 지지가 외상 후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었으나, 여성 농업인은 공식적 영역의 지지가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셋째, 본 연구에서 남성 농업인은 주거 형태가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성 농업인은 경제적 상태가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몇 가지 연구결과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에 대해 분석한 연구가 제한적이며, 연구자의 학식과 경험을 이용하여 연구결과에 나타난 관련 쟁점을 정확히 규명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결과가 나타난 이유와 작동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함에 있어 양적 연구방법만으로는 정확한 해석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추가적으로 질적 연구방법을 적용함으로써 난해한 연구결과에 대한 맥락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그 문제에 대한 의미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질적연구 결과
본 연구에서 심층인터뷰의 참여자는 성별, 주거 형태 등의 특성을 고려하여 다음 <표 10>과 같이 선정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과 관련된 주요한 주제로 자기노출에 대한 염려 및 공감, 공식적 영역의 지지에 대한 사회 안전망 및 공동체 훼손, 경제적 상태 또는 주거 형태에 대한 가장의 책임감과 자녀의 성공 등 3개의 주제가 도출되었다. 이렇게 고령 농업인들은 동일한 주제군에서도 성별에 따라 일부 상이한 하위범주가 추출되었고, 그 의미에 대해 고령 농업인의 시각에서 재명명하여 다음 <표 11>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자기노출과 외상 후 성장의 관계는 성별에 따라 자기노출에 대한 염려와 공감으로 구분되었다. 먼저, 남성 농업인은 개발에 따른 이주와 은퇴에 의하여 새로운 거주지를 준비하고 생계를 해결할 직업을 구하거나 안정적인 수입원을 물색하는 등의 경제적 위기를 경험함으로써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 내지 고통에 대해 가족에게 표출하는 것이 그들에게 걱정이나 부담을 초래하거나,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될 것을 염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참여자 1, 2, 4). 더욱이 택지개발 지역에서 오랜 시간 함께 생활했던 다른 농업인 중에는 보상금으로 인근 지역에 대토(代土)를 구입하였거나,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보상금을 수령하였지만 빠른 판단력과 결단력으로 대토를 마련하는 등의 방식으로 여전히 영농활동을 지속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괴감을 토로하였다(참여자 1, 2). 이에 따라 남성 농업인은 자신이 직면한 위기 상황이나 현재의 고통에 대해 표출을 자제하거나 명료한 전달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결국, 남성 농업인의 자기노출이 실질적인 자기개방이나 진정한 표출 효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여성 농업인은 택지개발 지역에 함께 거주했던 주민들과 간헐적으로 접촉하여 현재의 감정이나 문제 등을 공유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을 회복함으로써 삶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참여자 5, 6, 7, 8). 택지개발에 의하여 발생한 여러 문제점이나 고통에 대하여 현재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에게 말을 하여도 그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호소하였다(참여자 6, 7). 더욱이 다른 여성 농업인들도 현재의 동네 주민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거나 소속감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참여자 6, 7, 8). 결국, 이전의 이웃 주민들과는 오랜 시간 함께 거주했기에 편하게 깊은 대화를 전개하고 소통함으로써 상호 간에 대화의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회로 작용하였다. 택지개발 지역에 거주했던 이웃 주민들과는 자연스럽게 옛날 일을 회상하면서 표면적 자기노출을 넘어 내밀한 자기표출을 통하여 은퇴 등에 따른 고통과 좌절 경험을 지우고 일상의 평온을 찾는 효과가 나타났다(참여자 6, 7, 8).
둘째, 고령 농업인의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와 외상 후 성장의 관계는 성별에 따라 사회 안전망과 공동체 훼손으로 구분되었다. 먼저, 남성 농업인은 개발정책에 의하여 은퇴를 경험하였으나, 법령에 따른 적법한 절차와 경제적 보상 등이 제공된다는 개발주체의 대응 방식에 큰 실망감과 불쾌함 등을 갖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현실적으로 택지개발에 따른 이주자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인들에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은 안정적인 노년기 삶을 위해서 필수 불가결하다고 평가하였다(참여자 1, 2, 3, 4). 현재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이 제한적이고 자녀에게 또 다른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위축된 생활이 될 수 있으나, 공적 영역을 통하여 다양한 혜택을 지원받음으로써 자신의 역할이나 가장의 책임을 실질적으로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견고한 자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최근에 사회적으로 제기된 전세 사기나 은행권의 투자 손실 등에 대하여 정부에서 해결을 지원하는 사례를 거론하면서 자신들과 같은 개발 이주자들에게도 정부의 인식 전환과 법·제도를 개선하여 지원하거나 대책을 강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현재의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참여자 1, 2, 4).
반면에, 여성 농업인은 정부 등의 개발사업 주체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사업이 추진되어 비자발적으로 농지를 매각하고 영농활동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자들이 형성해 온 지역의 문화와 가치 등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정부가 그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성의한 대응과 획일적인 지원 등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회성 지원에 해당하는 보상금 등의 경제적 접근으로 주민을 대응하려는 제한된 방식으로 인하여 주민과의 갈등 조정이나 주민 요구를 해결할 의지가 부재한 상태로 평가하였다(참여자 5, 6, 7, 8). 이에 따라 개발 과정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현재까지도 그 당시의 불안과 분노 등의 부정적인 정서가 치유되지 못하고 개발에 따른 외상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여성 농업인은 이웃 주민들과 누려온 공동체가 훼손된 점을 아쉬워하며 그 문제를 주목하지 않는 개발 주체에 대해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여 개발정책에 대한 수용성까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참여자 5, 7, 8). 이에 따라 여성 농업인은 개발지역에서 함께 거주했던 이웃 주민 등과의 비공식적 지지체계에 더 크게 의지하며 부정적 정서와 개발 주체에 대한 서운함 등을 해소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고령 농업인의 경제적 상태 또는 주거 형태와 외상 후 성장의 관계는 성별에 따라 가장의 책임감 및 자녀의 성공으로 구분되었다. 먼저, 남성 농업인은 가장으로서 가족들이 주거 불안에 따른 고생을 염려하며 주택 가격보다는 주거 안정화를 고려하여 자가 매입을 결정하였다(참여자 1, 3). 이 과정에서 택지개발에 따른 보상금을 소비하여 경제적으로 불편함은 다소 있더라도 그것을 감내할 수 있으며, 경제적 상황이 여유롭지 못할 경우에는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참여자 1). 또한 택지개발에 의하여 주거를 이전하면서 주택을 바로 구입하지 않고 임대생활을 지속하면서 현재까지도 배우자와 주거 불안정에 노출되어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책과 후회하는 마음을 표출하였다(참여자 2, 4).
반면에, 여성 농업인은 개발 보상금을 이용하여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흡족함 등을 갖고 있었다(참여자 5, 6, 7). 이러한 부모의 마음이 크게 작용하여 성인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반대하는 남편을 설득하여 자녀를 지원함으로써 자신의 기본적 생활이 제약되더라도 자녀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성인기를 보내는 것을 갈망하였다(참여자 5, 7). 또한 개발에 따라 이주하여 보상금으로 주택을 매입하여 거주하고 있지만, 자신의 삶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택 매입보다는 자녀의 결혼 준비 등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고려하거나, 자신이 향후 병원비 등의 현금을 지출할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라면서 현금 자산을 보유하는 등의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참여자 8).
Ⅴ. 요약 및 논의
1. 외상 후 성장의 차이 및 변화
본 연구에서는 택지개발에 의해 은퇴한 고령 농업인은 시간 경과에 따라 외상 후 성장에서의 유의미한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외상 후 성장에 대해 반복측정분산분석을 수행하여 시간 경과와 성별의 상호작용 효과가 유의미하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이렇게 본 연구에서는 시간 경과에 따른 외상 후 성장은 성별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른 것으로 분석되었다. 결국,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은 시간 경과와 성별이 상호작용이 유의미하므로 집단별 차별화된 접근을 통하여 주거 이전과 은퇴에 따른 외상의 충격을 완화하고 변화된 삶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노년기 삶의 적응에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남녀 농업인은 Time 1∼Time 4에 이르는 동안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추이가 집단별로 상반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여성 농업인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더라도 외상 후 성장이 계속 향상되었으나, 남성 농업인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외상 후 성장이 계속 하락하였다. 그리고 여성 농업인은 그 기간 내 남성 농업인보다 모든 시점에서 그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모든 집단에서 그 기간 내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이 보통수준보다 낮았다. 이렇게 본 연구에서 시간 경과에 따라 남녀 농업인 집단은 외상 후 성장의 증감에 대해 다른 방향의 추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에 따라 시간이 경과할수록 남녀 농업인 집단에서의 외상 후 성장의 차이는 점차 확대되었다.
이것은 성인 남녀가 동일한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여성이 외상 사건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하여 심리적 고통을 남성보다 잘 극복하고 자신의 신념을 재구성함으로써 더 높은 성장에 도달한 것이라는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동훈 외, 2017). 다른 한편으로, 남성 농업인에게 수십년 영농활동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라 삶의 한 양식이면서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가업이라는 인식이 견고하게 형성되었으므로(윤순덕 외, 2008) 남성 농업인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영농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극단적인 사건 범주에 해당되어 개인으로 하여금 일시적인 충격 내지 분노를 넘어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도식의 구조가 크게 훼손되고 자기 정체성을 상실함으로써 변화된 삶을 수용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나 의지를 기대할 수 없다(주인석 외, 2021). 본 연구의 남성 농업인은 개발과정에서 대토를 마련하는 등의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여 직업을 상실한 자신에 대한 자책과 더불어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자괴감 등이 지속되어 개발과정에서 형성된 부정적 정서와 충격 등이 노년기 삶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은 모든 집단에서 그 기간 내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이 보통수준보다 낮았다. 본 연구에서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을 측정(5점 척도)한 결과, 외상 후 성장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 농업인 집단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 Time 4에서 M=2.84에 불과하여 그 수준이 양호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선행연구에서 택지개발에 의해 이주한 고령 농업인이 영농활동을 지속할 경우에 본 연구와 동일한 척도를 이용하여 외상 후 성장 수준을 조사한 결과, 이주한 고령 농업인의 특성에 따라 그 수준(M)이 3.46∼3.80으로 보고되었다(전병주, 2023). 이에 본 연구의 남성 농업인뿐만 아니라 여성 농업인도 영농활동 중단에 따라 심각한 외상의 충격에 노출되어 자신의 삶을 재건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 중에서 여성 농업인이 남성 농업인보다 Time 1∼Time 4에 이르는 동안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이 계속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 내 여성 농업인도 유의미한 성장의 변화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외상 후 성장 연구에서는 외상 후 1년 이상의 시점에서는 환자가 새로운 신념을 구축하고 변화된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나(Tallman et al., 2010) 은퇴를 경험한 고령 농업인이 자신이 경험한 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삶을 구축하는데 한계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의 외상 후 성장은 외상 경험에 이은 실존적 고통과 대처 등으로 구성되는 과정이 분리되거나 독립된 흐름이 아니므로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고 붕괴되었던 도식을 재건하여 내적 성숙에 이르러야 성장에 도달하게 된다(김영애·최윤경, 2017; 주인석 외, 2020). 본 연구에서도 여성 농업인은 과거 개발지역에서 형성된 지역의 공동체 문화와 가치가 훼손된 아쉬움과 그것을 회복시키는 대안을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에게 불만이 지속되었다. 이에 따라 여성 농업인은 개발 당시 느꼈던 분노와 서운함 등의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화된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데 한계를 보여주었다. 택지개발에 의해 비자발적인 은퇴를 경험한 것과 같이 장기간의 복합적 외상에 노출될 경우에는 단순 외상자보다 외상에 의한 고통과 심리적 갈등을 더 많이 경험하면서 삶에 부정적인 영향력이 누적되어 그 외상의 충격에서 벗어나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주혜선·안현의, 2011) 본 연구결과를 간접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은 개발에 따른 은퇴 등의 변화된 삶을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영농활동을 중단한 남성 농업인은 은퇴에 따른 외상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의 삶을 더욱 크게 부정적으로 지배하고 있어 외상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 노년기의 변화된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이렇게 본 연구에서는 택지개발에 의해 은퇴한 고령 농업인이 외상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도모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으므로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의 집단별 특성을 고려한 조속한 중재방안이 수립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2.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본 연구에서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농업인은 성별에 따라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그 영향력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남성 농업인은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 주거 형태,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 순으로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리고 영농활동을 중단한 여성 농업인은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 자기노출, 경제적 상태 순으로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즉,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이 인식하는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만이 남녀 농업인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으며, 그 외의 영향 요인들은 집단별로 다른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에 따라 외상 후 성장과의 관계에 대해 사회적 지지, 자기노출, 주거 형태와 경제적 상태의 순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은 성별에 따라 사회적 지지가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지금까지 보고된 여러 선행연구에서 사회적 지지와 외상 후 성장의 밀접한 관계를 제시하였다(송현·이영순, 2017; 이해서·신효정, 2021; Armeli et al., 2001; Weiss, 2002). 이러한 선행연구에서는 외상 사건에 노출된 개인에게 주어지는 지지적 반응은 위기 상황에서 정서적 고통과 과각성 상태를 완화하여 반추과정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하고, 견고하게 형성된 지지층을 통하여 자기개방을 시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외상 경험을 재구성하고 정교한 삶의 도식을 구축하여 성장으로 나아간다고 하였다. 본 연구에서 적용한 Tedeschi & Calhoun(2004) 연구에서도 개인이 직면한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지지는 외상 사건에 대한 의미를 재발견하고 도식을 재구조화하여 삶에 대해 긍정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하였다. 다만, 다수의 선행연구에서는 사회적 지지가 매우 다층적이고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성격이나 만족감 등을 고려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사회적 지지의 구체적 성격을 고려한 연구가 필요함을 제기한다(박선정·정규석, 2016).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적 지지에 대해 공식적 및 비공식적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는 영농활동을 중단한 남녀 농업인에게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식적 영역의 지지가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여성 농업인에게서 비공식적 영역의 지지가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여성 농업인은 지역의 문화나 가치 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인 대응과 일회성 경제적 보상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발 주체의 접근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과거 개발지역에 함께 거주했던 이웃 주민들에게 당시의 충격을 호소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외상 경험이 있는 개인은 가족이나 친구 등의 사적 지지체계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는다고 인식할수록 외상 사건에 대한 의미를 재발견하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며(정연균·최응렬, 2014), 암 생존자의 외상 후 성장 요인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사회적 지지 특히 가족의 안정적인 지지를 통해서 삶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재구조화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김희정 외, 2008). 또한 외상 사건의 충격으로 불안정하고 힘든 시기에 가족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하여 지지망이 강화됨으로써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인생에서의 바람직성(desirability)을 추구하여 의미있는 삶을 지향하게 된다고 하였다(전병주·김현수, 2019).
그러나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는 남성 농업인에서만 외상 후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은 위기상황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련 영역에 대한 보다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그 시기에는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가 유용성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Brandt et al., 2009). 더욱이 외상을 극복하기 위한 일련의 시기에 가족과 친구 등의 전통적인 지지체계에 대한 중요성과 함께 정부 지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됨에 따라 보건 및 복지 등의 분야에서 공식적 지원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Deindl & Brandt, 2017). 반면에, 본 연구에서 Tedeschi & Calhoun(2004)에서 제시한 외상 후 성장을 위한 주요 요인에서 남성 농업인의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가 모든 집단에서 나타난 다른 요인의 수준보다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 남성 농업인은 정부가 다른 사람의 주거 안정화를 위해서 자신의 집과 전답을 수용하여 본인의 삶을 빼앗아 간 것이라고 인식하거나, 자신의 생계와 소득을 우려함에 따라 개발주체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지속하고 있어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남성 농업인은 현재의 자신에게 어떠한 역할을 기대한다거나 자녀에게 지원을 받기보다는 노년층을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를 이용하면서 개발주체의 인식 전환과 법·제도 개정으로 이주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거나 지원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환경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선행연구에서도 개발전략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영농활동에 필요한 농지를 상실한 농업인은 이주와 은퇴 등에 따른 고통과 상처를 경험하며 개발주체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었으나, 개발사업 주체가 갈등 해결의 의지와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지지체계로 작동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사건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하여 심리적 안녕감을 증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전병주, 2023).
반면에, 여성 농업인은 남성 농업인과 달리 공식적 영역의 지지가 외상 후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농업인에서도 공식적 영역의 지지는 여성 농업인의 다른 요인보다 그 수준이 가장 낮았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 여성 농업인은 남성 농업인과 동일하게 주거뿐만 아니라 노년기 삶의 경제적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더욱이 개발사업 주체가 지역주민에게 오랜 기간 형성된 지역의 공동체 문화나 가치 등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지원과 무성의한 대응에 주민들이 실망하고 있었다. 현재 일회성 지원으로 마무리되는 보상금 등의 경제적 접근으로 주민을 대응하려는 제한된 방식으로 인하여 주민과의 갈등 조정이나 주민 요구를 해결할 의지가 부재한 상태로 평가하며 개발정책에 대한 수용성까지 부정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심층인터뷰 내용은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가 당사자의 특성이나 욕구를 고려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서 개발 이주자들의 다양한 특성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고 상처를 치유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견해와 일치한다(양난미 외, 2015). 더욱이 공적 영역에서의 지원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지원이 축소 또는 단절될 수 있어 기간이 제한되는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는 지속적으로 위험에 노출된 개인의 외상을 완화하거나 치유하는데 한계로 작용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Weinberg, 2017). 이와 같이 선행연구에서 외상을 경험한 개인은 친구, 이웃 등에 의한 비공식적 영역의 지지와 달리 공식적 영역의 지지는 당사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획일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거나 그 기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본 연구결과와 동일한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일부 선행연구에서는 조사대상자의 외상 유형에 따라 사회적 지지의 성격과 외상 후 성장의 관계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으며(전병주·김현수, 2019), 또 다른 선행연구에서는 사회적 지지와 외상 후 성장 간의 관련성이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기도 하였다(Cordova et al., 2001; Sears et al., 2003). 최근에는 외상 후 성장을 위해 가족 또는 친밀한 집단 내의 지지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의 지지 수준이나 유형에 따라 성장의 수준과 삶의 변화 정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Calhoun & Tedeschi, 2013). 결국, 본 연구와 같은 외상 후 성장을 위한 연구에서는 사회적 지지의 성격이나 외상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요인 간의 관계를 파악하려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둘째, 본 연구에서 자기노출은 여성 농업인에서만 외상 후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Tedeschi & Calhoun(2004)의 연구에서 개인의 자기노출은 외상 사건 이후에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정서적인 위안을 증진하여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삶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개인이 위기 상황에 직면하거나 고통을 경험할 때, 당사자가 외상을 진정으로 표출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안정을 회복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촉진한다고 하였다(Elderton et al, 2017). 본 연구에서 영농활동을 중단한 여성 농업인은 과거 개발지역의 이웃 주민과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며 현재의 불편함이나 역경 등을 일상적 대화 속에서 편하게 노출함으로써 상호 이해와 공감하는 기회로 이어져 진정한 자기표출에 따른 정서적 평온과 삶의 긍정적 변화를 증진하는 것이다. 결국, 본 연구에서 나타난 영농활동을 중단한 여성 농업인의 자기노출과 외상 후 성장의 관계는 선행연구와 동일한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농활동을 중단한 남성 농업인은 김은진(2015), 전병주(2023) 등의 여러 선행연구의 결과와 달리 자기노출이 외상 후 성장과 유의미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 남성 농업인은 자신의 상황을 표출함으로써 가족에게 부담을 초래하거나 친구 등에게 부정적 인식이 형성될 것을 우려하여 상대방에게 제한적으로 정보가 제공되는(hidden area) 자기개방에 그치어 남성 농업인의 답답함이나 괴로움 등을 야기한 정보에 대한 진정한 표출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개발과정에서 본인과 대조적으로 다른 농업인들은 신속한 판단력과 결단력으로 영농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토지를 매입한 모습에서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였다. 이에 따라 남성 농업인의 자기노출이 실질적인 표출 효과로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 연구의 남성 농업인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화의 본래 목적이 상실되고 자기노출의 효과도 희석되거나 제약된다는 연구결과(김경희, 2009)를 통하여 본 연구결과는 지지될 수 있다.
셋째, 택지개발에 따라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주거 형태와 경제적 상태는 성별에 따라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다르게 나타났다. 즉, 남성 농업인 집단에서는 주거 형태 그리고 여성 농업인 집단에서는 경제적 상태가 외상 후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것이다. 먼저, 본 연구에서 남성 농업인은 주거 형태가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농업인은 자가에서 생활하는 경우에 외상 후 성장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남성 농업인은 배우자 등의 가족과 생활할 수 있는 안정적인 주거가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평가하였다. 더욱이 고령 농업인이 주택을 구입하면서 보상금을 소비하여 일상생활에서 유용할 수 있는 현금 자산이 부족하여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반면에, 개발에 따른 이주과정에서 주거를 마련하지 못한 남성 농업인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자책하였다.
최근에는 혼인생활 전반에 걸쳐 비용 측면에서 남녀가 공평하게 분담하는 것으로 문화가 변화되고 있으나, 본 연구의 고령 농업인이 수십년의 혼인생활 중에는 가부장제에서 남성이 주택을 마련하는 등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현상이어서(이진숙·이윤석, 2024) 현재까지도 남성 농업인이 가장으로서 주거마련 능력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년기 삶에서 주거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 구성원의 건강과 안전 등을 담보할 수 있는 삶의 근거이고, 개인 및 가족생활이 이루어지는 생활의 토대가 된다(전병주·최은영, 2017). 이에 남성 농업인은 개발에 따라 은퇴 등을 경험하면서도 가장 역할의 책임을 깊숙이 내면화한 신념으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립적 주거마련에 집중함으로써 가장의 역할 수행에 대한 안도감과 가족 구성원의 복지 안정화를 도모하며 긍정적인 삶의 향유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에, 본 연구에서 여성 농업인은 경제적 상태가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여성 농업인은 경제적으로 양호하다고 인식할수록 외상 후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여성 농업인은 자신은 경제적으로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통하여 자녀가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성인기를 보내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 농업인은 개발 수용에 따른 보상금으로 주택을 매입하여 현금 자산이 없어서 자녀의 결혼비용 지원이나 자신의 병원비 등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상태가 외상 후 성장과 관련한 선행연구에서 유의미한 영향 요인으로 다수 보고된 바 있다(전병주·김현수, 2019; 이인정, 2016). 또한 부모의 성인자녀 지원에 대한 일부 선행연구에서는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자녀의 결혼비용 지원이나 결혼 이후 지원에 대하여 그 부담을 적게 느끼거나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지만(이진숙·이윤석, 2024), 또 다른 선행연구에서는 성인 자녀를 둔 어머니가 부모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고되었다(김예본 외, 2023). 더욱이 전업주부로 생활하는 어머니는 아버지 또는 직업이 있는 어머니와 달리 자녀의 성공이 자신의 행복감과 유의미한 관계로 나타났다(박영신·김의철, 2009). 이러한 선행연구를 통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여성 농업인이 부모 소명을 갖고 자녀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지속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행복감을 회복하며 개발에 따른 은퇴 등의 외상에서 벗어나 삶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사료된다.
Ⅵ. 결 론
본 연구에서는 택지개발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주거 이전과 더불어 비자발적 은퇴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고령 농업인들은 다른 사회학적 특성을 지닌 이주자 집단보다 택지개발이 더 큰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여기서의 은퇴는 일자리에서 단순히 물러나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 행동에 중요한 변화를 촉진시키는 사건이므로 은퇴와 관련한 생애주기 관점에서는 ‘은퇴로의 전이(transition)’의 시간성(temporality) 개념이 요구된다(김지경·송현주, 2010). 이에 본 연구는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외상 후 성장의 추이에 대한 종단적 분석을 처음으로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농촌사회에서 영농활동과 지역활동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여성 농업인들이 증가하고, 노년기 삶에서 성별에 따른 경험 차이는 농업인의 삶을 고찰할 때 함의를 도출하는데 주요 작동요인으로 나타나 고령 농업인의 성별에 따른 분석을 진행하였다(양승민·최재성, 2021; 임소영 외, 2021).
본 연구에서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에게 시간 경과와 성별의 상호작용이 유의미하므로 집단별 차별화된 접근을 통하여 주거 이전과 은퇴에 따른 외상의 충격을 완화하고 변화된 삶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노년기 삶의 적응에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다만,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남녀 농업인의 외상 후 성장은 Time 1∼Time 4에 이르는 동안 2개 집단에서 상반된 양상이 나타났다. 여성 농업인은 그 기간 내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더라도 외상 후 성장이 계속 개선되었으나, 남성 농업인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외상 후 성장이 계속 하락하였다. 그리고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여성 농업인은 남성 농업인보다 각 시점에서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남성 농업인뿐만 아니라 여성 농업인도 모든 시점에서 외상 후 성장의 수준이 보통수준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은 시간이 경과하더라도 개발에 따른 은퇴 등의 변화된 삶을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남성 농업인은 은퇴에 따른 외상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의 삶을 더욱 크게 부정적으로 지배하고 있어 외상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 노년기의 변화된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본 연구에서 택지개발에 따라 은퇴한 농업인은 성별에 따라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그 영향력이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는 Tedeschi & Calhoun(2004) 모델과 주요 선행연구에서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 일부 요인에서 다른 결과가 분석되었다. 남성 농업인은 자신의 상황을 표출함으로써 가족이나 친구 등에게 부담을 초래하거나 부정적 인식이 형성될 것을 우려하여 진정한 표출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여성 농업인은 오랜 기간 지역에서 형성된 공동체 문화나 가치 등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지원과 무성의하게 대응하는 개발 주체에 실망하여 공식적 영역에서의 지지는 긍정적인 자원으로 작동하지 못함으로써 외상 이전의 도식을 재건하여 노년기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지각하는데 한계가 나타났다. 아울러 남성 농업인은 가장으로서 자립적 주거마련을 실현함으로써 가장의 역할 수행과 가족 구성원의 복지 안정화를 도모하며 긍정적인 삶의 향유를 기대하였으며, 여성 농업인은 부모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의 헌신하는 과정에서 자녀가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성인기를 보내는 것에 안도하면서 삶의 의미와 행복감을 회복하고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실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에서 고령 농업인에게 영농활동은 노년기 삶을 지탱하며 적응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에게 이전 영농활동을 대체하거나 은퇴에 따른 미충족 욕구를 해결할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개발지역 인근에 공동 경작지를 조성하거나, 고령 농업인이 평생 습득한 영농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마련함으로써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외상을 완화하고 외상 후 성장의 증진을 기대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농업인의 고령화 문제와 더불어 농업에 대한 세계화 및 경쟁 가속화에도 불구하고 고령 농업인들은 농업에 대한 전통적인 규범적 신념으로 농업에 계속 종사하며 은퇴를 기피한다는 것이 여러 선행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으므로(Cavicchioli et al., 2018; Moreno Pérez & Lobley, 2015)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은퇴를 경험하여 불확정성이 한층 높아진 개발지역 고령 농업인들의 삶을 재건하는 방안을 개발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성 농업인에게는 자기 또는 타인과의 대화와 표현적 글쓰기를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거나 여성 농업인에게는 개발정책의 필요성과 정책집행 수단의 적절성 등을 공론화하여 개발사업에서의 대립과 갈등을 완화하고 개발사업의 수용성을 추동(推動)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사회적으로 주택난을 해소하고 주거 안정화를 도모하려는 개발정책이 사회적으로 외부적 정당성(legitimacy)은 충족되고 있으나, 정작 개발정책의 직접적 당사자인 고령 농업인에게는 정책 순응이 저조하거나 형식적 순응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최근까지도 정부에 의해 획일적이고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개발정책으로 인하여 강압적인 이주 문제를 초래하거나 취약한 이주자 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므로(Almeida et al., 2022) 이주자와의 ‘공동의 사실확인(joint fact-finding)’을 통하여 정책수요 집단이 순응할 수 있는 개발정책의 설계와 더불어 주거권과 생존권 보호 등을 포함하는 이주대책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본 연구결과에 기초하여 사회적 지지의 성격과 외상의 유형 등을 고려한 반복적 연구를 시도하여 이주한 고령 농업인의 성별에 따라 외상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맞춤형 지지체계를 발굴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본 연구에서는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을 대상으로 시간경과에 따른 외상 후 성장의 추이를 엄밀하게 파악하였고, 고령 농업인이 시간 경과에 따라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외상 후 성장의 차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집단별로 차별화된 접근을 통하여 영농활동 중단 등에 따른 외상을 완화하고, 변화된 노년기 삶을 긍정적으로 향유하기 위한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나아가, 택지개발 사업과 관련한 제도의 미지한 부분을 보완하여 개발지역의 농업인 등 이주자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보장하고, 택지개발이 본래 제도의 취지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근거자료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연구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다만, 본 연구는 일부 지역에서 실시된 택지개발 사업의 고령 농업인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연구결과를 일반화하기에 주의를 요한다. 그리고 택지개발에 의하여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가구 형태, 보상금액 등을 기준으로 집단을 세분화하거나, 영농활동에 종사하지 않고 단지 주거가 수용된 노인과의 비교연구를 진행함으로써 본 연구의 제한점을 보완하고 택지개발 이주자가 의욕하는 삶을 구현하기 위한 보다 실질적인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택지개발에 의하여 영농활동을 중단한 고령 농업인이 다시 영농활동을 재개하는 등의 영농활동과 관련된 신분 변동을 반영하여 고령 농업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한 추적연구를 시도함으로써 택지개발 이주자의 삶을 파악하기 위한 보다 정교한 기초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구방법은 후속연구에서 실천해 보고자 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0S1A5B5A1608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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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충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에서 택지개발에 따른 이주자의 외상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다. 최근 주요 논문으로 “태양반사광에 의한 생활방해에 관한 판례 고찰 및 시사점”(2023), “비자발적 실업을 경험한 고령 근로자의 외상 후 성장에 관한 연구: 실업급여 수급을 중심으로”(2024), “친환경 택지개발에서 정책 집행 요인이 정책수용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2024) 등 다수 논문을 발표하였다. 주요 관심분야는 사회보장, 주거복지, 보건의료이다.